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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선미]‘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생활인구와 로컬의 미래

입력 | 2023-02-09 03:00:00


김선미 산업1부 차장

‘하우스 비전’이라는 전시가 충북 진천에서 열려 다녀왔다. 논밭에 각종 집과 농막이 들어선 것도 신선했지만 그걸 보러 진천까지 온 젊은이들이 많은 건 더 신기했다. 하우스 비전은 일본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 하라 겐야가 ‘급속한 도시화를 거친 아시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로컬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2013년 시작한 글로벌 전시다.

‘농(農)’을 주제로 한 이 전시에서는 지방의 미래 라이프스타일이 제안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가 만든 ‘작은 집’에 들어서니 ‘집이 꼭 클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2.4㎡의 입방체 모듈을 쌓아 바깥 풍광을 보며 책을 읽기에 좋은 집이었다. 아난티 코브를 설계한 민성진 건축가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유리 온실 속 복층 집을 선보였다. 키우던 하우스 작물로 아일랜드 조리대에서 요리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하라의 생각은 이랬다. “사람들은 좁은 집을 비싸게 사는 도시에 한계를 느낀다. 인간의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자연이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집은 신분의 상징도, 건축적 야심의 표현도, 부동산 가치를 지닌 상품도 아니다. 집은 에너지, 저출산과 고령화, 농업과 먹을거리 등 산업과 미래의 교차로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마이세컨플레이스’ 리모델링 전. 클리 제공

충남 공주시 유구읍 ‘마이세컨플레이스’ 리모델링 후. 클리 제공


최근 한 스타트업을 통해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한 워킹맘 한모 씨(39)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충북 청주에 사는 한 씨는 일곱 살 쌍둥이를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어 주말마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니 시골집을 장만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이 스타트업의 ‘마이세컨플레이스’ 서비스를 알게 됐다고 한다. 건축과 부동산 전문가들이 창업한 이 청년 스타트업은 농촌의 빈집을 ‘꿈의 시골집’으로 탈바꿈시킨다. 부지 300㎡(약 100평)에 건물 43.65㎡(약 13.2평). 잔디 깔린 마당에는 오두막 미끄럼틀이 있고 작은 집 안에는 로봇 청소기와 빌트인 가전이 있다. 헌 집을 새 집으로 고친 뒤 5명에게 지분을 쪼개 파는 형태라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인 한 씨는 5000만 원만으로 연중 5분의 1의 기간 동안 이 집을 사용할 수 있다. 한 씨는 “앞산이 보이는 마당에서 ‘불멍’을 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이웃 할머니가 건네는 배추로 김치도 담근다”고 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시골집에 젊은이들이 드나들면서 마을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다.

지방 소멸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 건축가와 청년들이 집과 로컬의 미래를 고민해 왔듯, 한국에서도 젊은 스타트업들이 움직여 반갑다. 지방의 빈집을 숙소나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전원생활을 가능케 하는 모듈러 주택을 짓는 스타트업도 있다. 일본 정부가 2016년부터 ‘관계인구’(지역을 자주 찾는 인구)를 인구 정책에 활용하는 가운데 한국도 올해부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시행하며 ‘생활인구’(통근과 통학 등으로 체류하는 인구 포함) 개념을 도입했다. 대지진만큼이나 팬데믹도 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판을 흔들었다. 시골집에서 ‘나다움’과 마음의 위로를 찾는 생활인구가 로컬에 젊음과 활기를 불러오기를 기대한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