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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 화물파업’ 이끈 이례적 강경대응…정부, 후속 협상서도 주도권

입력 | 2022-12-10 06:41:00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파업 16일 만에 총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 파업에 대한 싸늘한 시선과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고수한 정부 방침에 파업 명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사진은 9일 오후 경기 의왕시 의왕ICD에서 화물차들이 업무에 복귀하는 모습. 2022.12.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8일 대전 대덕구 민주노총 대전지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파업철회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화물연대 노조원이 회의장 복도를 지나고 있다. 2022.12.8/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김은혜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철회와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12.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총파업) 사태가 보름 만인 9일 종료됐다. 사상 첫 운송개시명령(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선 정부는 파업 종료 선언 뒤에도 ‘100% 복귀’를 촉구하며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는 파업의 배경이 된 안전운임제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물연대 입장에서 보면 ‘안전운임제 3년 연장’보다 후퇴된 것으로, 정부가 향후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편에서는 임기 내 노동계와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총파업 보름 만에 종료…정부 “안전운임제 재검토 필요”

화물연대는 9일 오전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종료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과반 찬성으로 총파업을 종료하고 현장에 복귀한다고 밝혔다. 투표에는 조합원 2만6144명 중 3573명(13.6%)이 참여했다. 결과는 찬성이 2211명(61.8%), 반대가 1343명(37.6%), 무효표가 21명(0.6%)이다.

국토교통부는 같은날 오후 안전운임제 연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수상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관련 정례브리핑에서 “재검토를 해야 할 부분”이라며 “안전운임제와 관련해 여러 문제점들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 부분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안전운임제의 실효성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간 정부와 여당에서는 문재인정부에서 3년 시한으로 도입된 안전운임제 이후 오히려 안전사고가 늘었다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날 오전 인천의 공사현장을 찾은 원희룡 장관도 “지난 3년 동안 효과에 대해 극과 극으로 평가가 갈리는데 단순히 연장한다고 갈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화물운송업의 여러가지 고질적인 문제점들도 제대로 개선해야겠다는 입장에서 국토부가 주도해 논의를 이끌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화물연대 입장에서 보면 정부의 ‘원점 재검토’는 총파업 전보다 후퇴된 안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총파업 직전인 11월22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 및 품목 확대 불가’ 입장을 정한 바 있다. 화물연대로선 사실상 ‘마이너스 손익계산서’를 받아든 셈이다.

◇협상 문 닫고 2차례 운송개시명령…이례적 강경 대응

정부는 이번 파업 대응에서 이례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파업 6일째인 지난 11월29일 시멘트 분야에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제14조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게 대표적이다.

해당 조항은 노무현정부였던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을 계기로 2004년 도입된 것으로, 그동안 단 한 번도 발동된 적 없었다. 화물연대는 2003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1년에 2차례 총파업을 진행했는데, 정부의 강경한 대응 역시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정부는 8일 철강·석유화학 분야에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첫 업무개시명령을 기점으로 시멘트 수급량이 회복되고, 주요 항만 물동량이 개선되는 등 효과가 확인된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는 화물연대와의 협상도 전면 중단했다. 11월20일 국토부와 화물연대의 2차 협상을 마지막으로 물밑 협상조차 가동되지 않았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파업이 장기화되는 사이 생계 등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업무에 복귀하는 조합원들이 생기면서 파업 동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의 강경 기조는 파업 종료 선언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미복귀자에 대한 행정처분 및 고발조치를 진행하는 한편,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도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 국토부가 지금까지 파악한 미복귀자는 24명으로 이 중 2명이 고발 조치됐다. 국토부는 자동차 번호판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조합원 34명도 전원 고발했다.


◇‘대화 재개’ 주도권은 정부에…“노동계와 격돌 피해야”


정부는 파업이 종료되면서 주말을 지나 12일부터 조합원들의 업무 복귀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선(先) 복귀 후(後) 대화’ 원칙에 따라 대화도 재개될 전망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9일 오후 “대화 테이블은 이제 복귀하는 대로 마련이 되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도 국회에서 적절하게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가 법 개정사항인 만큼 다시 국회 논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논쟁은 국회에서 쉽사리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다수당이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3년 연장안’이 담긴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상태다. 이달 31일인 일몰제 시한 만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8일 정부·여당안을 수용했음에도 정부·여당이 ‘무효’란 입장을 고수하자 단독처리를 강행했다.

해당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거쳐 본회의를 통과할 순 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여야 갈등의 핵심인 내년도 예산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등과 맞물린 점도 부담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실상 정부가 관련 논의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여당을 완전히 배제한 야당의 단독 처리가 결정적으로 독이 됐다”며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주가 나올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없이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화물연대에 대한 강경 대응은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로 해석된다. 임기 내 노동계와 적대적 관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물연대뿐 아니라 노동계 전반이 주춤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정부의 강경 기조가 계속된다면 달리 선택권이 없는 노동계와 격돌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장기적인 노정관계를 고려한 전략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