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39조원 규모의 내년 나라살림 계획을 일찌감치 내놨지만, 국회는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말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 초부터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경우 최소한의 예산만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준예산’이 집행되지만, 정부가 새로 만들거나 씀씀이를 키운 민생 지원 사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4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여야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 내년 예산안과 부수 법안인 법개정안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31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 ‘이재명표 예산’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 세제와 관련된 견해 차이도 큰 탓이다.
이러면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준예산’이 편성될 수 있다. 현행법상 준예산에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비, 법률상 지출 의무의 이행을 위한 경비,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비 등이 포함된다.
정부가 손댈 수 있는 예산을 뜻하는 재량지출은 사실상 집행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재량지출은 297조3000억원으로 총지출의 46.5%를 차지하고 있다.
즉, 준예산이 투입된다고 해도 정부가 내년에 추진하기로 한 사업의 절반가량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번에 마련한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편성한 것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시작부터 국정과제 추진이 삐걱이게 되는 셈이다. 특히 아동, 청년, 소상공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 사업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예산을 편성하면서 취약계층 소득·고용·주거 안전망 관련 예산을 기존 27조4000억원에서 31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구체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고인 5.47%로 올리고, 생계급여 지급액도 4인 기준 월 154만원에서 162만원으로 확대했다.
생계·의료급여 재산 기준도 완화해 4만8000가구에 추가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는 최근 급격한 주택 가격 인상 등에 따라 기존 수급자들이 탈락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한 장치다.
이외에 소상공인 부실 채권을 사들이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 운영과 장애인 돌봄·생활 등 맞춤형 통합 지원 강화에도 각각 3000억원을 쓸 계획이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준예산이 편성되면 물가 인상분 등을 감안해 늘린 지원 사업 예산의 혜택을 다 못 받게 되는 것”이라며 “최근 수출기업이 어려운데 수출·물류 바우처도 지급되지 않고,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융자도 막힐 수 있다”고 전했다.
내년 1%대 경제 성장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예산’ 편성에 대한 정부의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예산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 사업계획 공고, 지방비 확보 등 후속 절차도 늦어져 정부가 마련한 민생·일자리·중소기업 지원 예산 등의 연초 조기 집행에도 차질이 발생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럴 경우 서민 어려움이 가중되고 경제 회복에도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큰 만큼 법정기한 내 조속한 확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