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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뜻보다 과학의 눈으로 세상 밝힌 ‘탈레스’[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입력 | 2022-10-21 03:00:00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밀레토스 시장 출입문. 너비 30m, 높이 16m, 폭 5m에 이르는 대리석 건물로서 엄청난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고대 그리스의 메트로폴리스였던 밀레토스의 당시 위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밀레토스의 물질적 유산은 일부만 남았지만 그곳이 배출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 현자 탈레스의 삶과 철학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시사점을 던진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과거에 번성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도시들이 많다.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Miletos)도 그렇다. 2600년 전 밀레토스는 흑해 연안에 수십 곳의 식민도시를 거느린 메트로폴리스, ‘어머니 도시’였다.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 도시의 부강했던 옛 모습이 남아 있다. 박물관 안쪽에 우뚝 선 밀레토스 시장 출입문은 엄청난 크기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밀레토스의 진짜 유산은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밀레토스는 서양 학문의 요람으로서 인류 문명에 기여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덕분이었다. 》


만물의 기원을 찾은 철학자

탈레스는 밀레토스의 현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적인 일이나 공적인 일로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언젠가 소금장수가 그를 찾아왔다. ‘시장으로 소금을 나르던 당나귀가 미끄러져 냇물에 빠졌어요. 그 뒤 이 녀석은 같은 곳에 이르면 냇물에 빠져 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무룩한 소금장수에게 탈레스가 말했다. ‘다음에는 당나귀 등에 소금 대신 솜을 가득 실어 보게!’ 이웃의 강대국 리디아가 동방의 신흥 세력 페르시아에 맞서기 위해 밀레토스에 동맹을 제안하자 탈레스는 동맹 체결을 가로막았다. 만약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의 고향 도시는 페르시아의 침략과 약탈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탈레스는 기하학이나 천문학 등 당대의 첨단 학문에도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는데, 사람의 실제 키와 그림자 길이가 같은 때를 찾아내어 그때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에 근거해서 실제 높이를 알아냈다고 한다. 탈레스는 일식 날짜를 정확히 예언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일식이었다. 그래서 이날을 ‘서양 철학의 탄생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탈레스가 서양 철학과 학문의 아버지로서 인류 정신사에 발자취를 남긴 것은 실용적 지혜 때문도, 학문적 지식 때문도 아니다. 그는 쓸모 있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물음에 몰두했기 때문에 철학자가 되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일까? 탈레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았다. ‘물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밀레토스 앞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압도되어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면 모든 생명체에 물기가 가득 찬 것을 관찰했기 때문일까? 액체 상태의 물이 기체 상태의 공기로, 다시 고체 상태의 얼음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연 감싼 신화의 베일 벗겨내


‘그런 황당한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지금 돌이켜 보면 탈레스의 생각은 소박해서 비웃음을 살 수 있다. 한없이 다양하고 변화무상한 세계의 현상을 물의 변화로써 설명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물이 만물의 시작이라면 불은 어떻게 생겨났다는 말인가? 물이 만물의 시작이라면 세상의 수학적 질서와 구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지혜로운 사람 탈레스도 이런 질문들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공적이 깎이는 것은 아니다. 탈레스의 공적은 후대 사람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기원과 질서에 대해 더 탐구하도록 이끈 데 있기 때문이다.

탈레스 시대의 대다수 그리스인들은 그의 질문과 대답의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기원전 7∼6세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신화적 사고 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신화는 자연 현상과 인간사를 그 배후에 놓인 신들의 뜻과 행동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모든 것은 바다의 신과 강물의 신이 결합해서 생겨났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 뒤에는 제우스의 분노가 있고, 지진은 해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땅을 찔렀기 때문에 일어난다. 역병은 사람들의 잘못을 응징하기 위해 아폴론이 보내는 벌이다. 이렇게 세상만사를 인격적인 신들의 변덕스러운 행동 탓으로 돌리는 것이 신화적 사고 방식이었다.

탈레스는 이런 신화적 상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첫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을 닮은 신들의 자의적 행동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물질의 법칙적 운동에 의해서 세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물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탈레스의 말은 당대의 지배적 믿음에 대한 도전이자 자연을 감싸고 있던 신화의 베일을 벗겨낸 과감한 시도였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탈레스는 자연 자체를 발견했다!


남들이 외면하는 세계 관찰

밀레토스의 현자 탈레스의 흉상을 본뜬 기원전 4세기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별난 생각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에 몰두하는 창조자들과 예술가들은 세상과 어울리기 힘들다. 그렇게 보면 탈레스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반(反)시대적 생각에 매달리면서도 세상과 큰 불화 없이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도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밤, 별을 관찰하기 위해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집 밖에 나간 탈레스가 하늘을 보고 걷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그가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자 늙은 하녀는 이렇게 대꾸했다. “탈레스여, 발아래 있는 것들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늘에 있는 것들을 알겠다고 나서는군요.” 그 순간 하녀의 눈에는 탈레스가 한갓 어리석은 자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녀가 전혀 알 수 없는 경험이 있었다. 남들이 외면하는 세계를 관찰하는 즐거움, 자족감과 지적인 희열이었다.

탈레스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 사람들 중에는 소금장수처럼 눈앞의 문제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주 원칙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공정한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부유한 밀레토스 시민들의 관심거리도 우리의 물음과 다를 바 없었다. 탈레스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누가 행복한가요?”라는 물음에 그는 “몸이 건강하고 영혼이 슬기롭고 본성이 잘 도야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우리는 가장 훌륭하고 정의롭게 살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대꾸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비난하는 것들을 우리 스스로 행하지 않아야지.” 그가 남긴 조언들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친구들을 기억하라”, “겉멋 부리지 말고 맡은 일을 잘하라”.

우리가 탈레스에게 미래 세대의 교육을 위해 조언을 구한다면 그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쓸모 있는 지식을 쌓으라고 닦달하지 말라. 주변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놀라움을 체험하게 하라.’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