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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총 없이 나가는 기분”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의 ‘공인구’ 작심발언 [강홍구의 터치네트]

입력 | 2022-09-07 11:50:00


“후배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준비) 해야죠.”

최근 만난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37·대한항공)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남자 배구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20년 넘게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에서 마무리된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챌린저컵(VCC)에서도 목표로 내걸었던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내년 파리올림픽도 멀어졌다.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등에 출전했던 한선수는 이번 VCC에서도 팀의 주전 세터로 뛰었다.

유소년 육성시스템 등 장기적인 과제를 거론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한선수가 언급한 건 바로 공인구였다. 한선수는 “첫 번째로 우리 리그도 국제무대에서 쓰는 미카사를 공인구로 써야 한다.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배구 발전을 위해선 모두 (공인구를) 바꿔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공인구 관련) 이야기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대표팀은 힘들다고 느꼈다”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현재 V리그를 비롯한 국내 무대에서는 스타스포츠 공을 공인구로 쓰고 있다.

선수들이 체감하는 공의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한선수는 두 공의 차이를 묻는 말에 “아예 다른 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표팀에 들어가면 (미카사) 공에 적응하는 데만 3주 정도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 3주도 그나마 서로 공을 주고받는데 익숙한 정도지 공격, 수비는 물론 서브에서도 미스가 많이 나온다. 때론 경기하면서도 완벽한 감각은 아니라고 느낄 정도”라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공의 특성도 특성이지만 전 세계에 있는 선수들이 모두 미카사를 쓰는데 우리만 스타공을 쓴다. 어려서부터 그 공을 써온 외국 선수들과 단기간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가 대결을 한다면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전쟁터에 총을 안 들고 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프로 15번째 시즌을 맞는 세터 한선수는 그동안 V리그에서 가장 많은 1만6378개의 세트(토스)성공을 기록했다. KOVO 제공

선수마다 감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두 공의 차이를 묻는 말에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답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한선수의 팀 동료이자 역시 국가대표 세터 출신인 유광우(37)는 “선수들은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매번 미카사에 적응해서 국제대회에 나가고 돌아와서는 다시 스타공에 적응해서 국내 리그에 뛰다 보니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스폰서십 계약 외에도 추가 비용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공인구 이슈는 단기간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오랜 시간 대표팀에서 뛰어온 한선수의 이야기인 만큼 더욱 귀가 기울여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올해로 프로 15번째 시즌을 맞는 한선수는 그동안 V리그에서 남·여부 통틀어 가장 많은 1만6378개의 세트(토스)성공을 기록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