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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인아]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에 있나?

입력 | 2022-09-03 03:00:00

나이-경험 쌓일수록 새로움에서 멀어지지만
통념 밖서 문제 바라보면 창의적 발상 싹터
일터에서도 통념 깨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나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이 마르다. 그런데 일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새로운 생각은 나이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새로움에서 멀어질까 걱정이 컸다.

십 년 전, 회사를 졸업하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 한 달간 북유럽 여행길에 나섰다. 회사에 다닐 때 항공편과 호텔까지 다 예약하고도 두 번이나 취소한 적이 있던 터라 기대가 컸다. 특히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볼 생각에 크게 설렜다. 마침내 그날이 왔고 함께 간 후배와 나는 베르겐에서 송네 피오르를 향해 나아갔다. 위키백과엔 이렇게 나와 있다. ‘피오르란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말한다. 빙하로 말미암아 생긴 U자 모양의 골짜기에 빙하기 종결 이후 빙하가 녹아 해안선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침입한 것이다. 노르웨이 해안, 남미 칠레 남부 해안, 그린란드 해안 등이 유명하다.’ 이 무미건조한 설명을 이렇게 바꿔 놓고 싶다. ‘피오르는 바다가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비경 중의 비경이다’라고.

우리를 태운 배가 피오르를 향해 나아가자 갑판에선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끝 간 데 없는 탄성을 터뜨렸다. 함께 간 후배도 “어머! 어머!” 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어땠을까? 나는 그때 거기 있었던 사람 중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 오슬로에서부터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배 타고….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마침내 목도한 대단한 풍광 앞에서 나는 별로 감동하지 않았다. ‘뭐지? 나는 왜 놀라지 않고 감동하지 않는 거지? 기대가 너무 컸나?’ 곧 이유를 알아차렸다. 나는 피오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뉴질랜드 남섬, 밀퍼드 사운드에서 피오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랬으므로 노르웨이 송네까지 어렵게 찾아갔지만 두 번째 피오르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았고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성격이 침착해서 조용했던 게 아니었다.

사정이 이랬으므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고서도 머릿속에선 계속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이미 오십이 넘었다, 앞으로 처음 해 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이미 많은 것들을 경험한 내가 앞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여행 중에도 질문을 놓지 않은 나는 마침내 어떤 생각에 가닿았다.

통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통념이란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이지만 그만큼 허술한 구석도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쓱 보고 말 때는 알 수 없던 것을 새로 만날 수 있다. 창의적 사고를 거론할 때 자주 언급되는 ‘Out of Box’와 비슷한데, 으레 그럴 거라고 단정해 버리고 마는 통념 밖으로 나와 그 안쪽 혹은 그 너머를 제대로 마주하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우리 책방이 오픈했을 때 큐레이션이 새롭고 차별화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는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의 통상적인 분류를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에게’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등의 주제로 큐레이션을 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했을까? 다른 책방과 차별화를 위해 이렇게 했을까? 분류를 새롭게 하려고 이렇게 했을까? 아니다. 독자들의 고민에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 물론 이런 새로운 큐레이션을 하기까지는 먼저 질문이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고 왜 책을 읽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민이 있거나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선배를 찾기도 하지만 책도 찾는다는 인사이트를 발견했고 그 끝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를 중심에 둔 지금의 분류와 큐레이션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도서관식 분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새로운 방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하루하루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문제는 늘 새로운 해법을 요구한다. 새로운 생각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통념을 넘어서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발견하고 도달한 생각이 아니라 그저 통념에 기대어 뭔가를 해볼 요량이라면 우선 그 생각 밖으로 나와 그 안쪽을, 혹은 그 너머를 보는 게 어떨까. 그러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뭔가가 어슴푸레 보일 것이다. 그것을 잘 갈무리하시라.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을 틔울 테니.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