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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에 잠긴 파키스탄[횡설수설/장택동]

입력 | 2022-08-31 03:00:00


“구조 활동을 위해 내륙에 처음으로 해군을 출동시켰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땅이 작은 바다처럼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홍수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고, 3300만 명이 수해를 입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늘에서 지옥문이 열렸다”는 절규마저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올봄 최고 5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더위가 끝나자 ‘괴물 몬순(장마)’이 찾아왔다. 강한 빗줄기가 이어졌고 피해가 집중된 신드주에서는 8월에 평년보다 8배 많은 비가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110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채의 집이 부서졌다. 경제적 피해는 1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미 물가 급등과 식량난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2억3000만 파키스탄 주민들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파키스탄은 1인당 GDP가 15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국이어서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부실하게 지어진 일부 댐과 제방들은 이번 홍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파키스탄의 산들은 대부분 가파르고 나무도 적어서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진단했다. 파키스탄 적신월사(적십자사)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키스탄은 2010년에도 큰 홍수로 2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일부 학자들은 2010년과 올해 모두 라니냐(태평양 해수온 이상 현상)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라니냐와 홍수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폭우가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올라가면 남아시아 지역에서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이 5%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5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몫은 0.4%에 불과하다. 미국(21.5%)이나 중국(16.4%) 등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 기후연구기관 저먼워치가 평가한 기후위험지수에서도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등 가난한 국가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선진국들이 내뿜은 온실가스에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은 빈국들’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공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들의 고통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