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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형준]檢, 직권남용 직접수사 고수한 이유 보여줘야

입력 | 2022-08-24 03:00:00

황형준 사회부 차장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A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많이 하지만 과거에는 공무원 수사는 돈이 나오면 하고 안 나오면 손을 뗐다”고 했다. 공무원이 뇌물 등 사적 이익을 취한 게 아니면 기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무수행 중에 벌어진 직권남용의 가벌성(可罰性)이 낮다는 취지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은 박근혜 정부 인사를 향한 적폐청산 수사와 사법부를 향한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선 ‘직권남용의 남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 대검찰청의 ‘2021 검찰연감’에 따르면 직권남용 사건의 접수 건수는 2011년 1808건에 불과했지만 2020년 6110건으로 10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적폐청산 수사가 시작된 후부터는 △2017년 3224건 △2018년 5511건 △2019년 6697건 등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실제 기소 건수는 많지 않았다. △2017년 18건 △2018년 11건 △2019년 8건 △2020년 4건 등에 불과했다. 죄가 안 되는 고소·고발이 급격히 늘다 보니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어려워 정작 기소조차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문제는 직권남용죄의 경우 정치보복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23기) 동기이자 형사법 전문가로 꼽히는 이완규 법제처장도 변호사 시절인 2019년 5월 학술 강연에서 직권남용의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많다고 우려했다. 이 처장은 당시 “공무수행에 대한 형벌권 행사가 자의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이 사법 권력까지 장악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공무원을 정쟁의 희생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최근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해 ‘공직자범죄’로 분류됐던 직권남용 등을 ‘부패범죄’로 재규정했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검찰청법 개정안에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되자 시행령을 통해 직권남용을 직접수사 범위 내로 편입시킨 것이다. 법무부는 직권남용이 부패방지법 및 국민권익위원회법과 유엔 부패방지협약 등에 부패범죄로 규정된 점을 근거로 “원래 직권남용은 부패범죄”라는 논리를 폈다.

개정 검찰청법은 직권남용 등 공무원범죄를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에서 배제했다. 그런데도 대통령령에서 직권남용을 수사 범위에 다시 포함시킨 것은 법률적으론 문제가 없더라도 입법 취지를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직권남용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도 할 수 있다. 정치보복 논란을 감수하고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왜 직권남용 수사를 직접 하려 하는지, 검찰은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수사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넘치거나 치우치지 않고 정밀하게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식 수사가 그 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연간 10명 안팎 기소에 불과한 직권남용죄를 검찰이 도구와 수단으로 쓰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울 것이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