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高물가에 줄어든 실질소득, ‘소득세 물가연동제’ 필요하다[동아시론/전병욱]

입력 | 2022-07-26 03:00:00

14년 만 소득세 개편, 세부담 일부 감소
누적된 물가상승률 반영하기엔 역부족
과세표준, 물가에 연동시켜 정기 조정해야



전병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


정부는 21일 하위 2개의 소득세 과세표준 기준금액(과세대상 소득의 세율구간을 구분하는 금액)을 각각 200만 원, 400만 원씩 올리는 내용 등을 담은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최저인 6% 세율 구간은 ‘1400만 원 이하’로, 두 번째로 낮은 15% 세율 구간은 ‘5000만 원 이하’로 확대되게 된다. 이를 통해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개인 납세자가 늘게 되며, 결국 서민·중산층을 중심으로 세부담이 일정 부분 감소하게 된다.

최근의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다. ‘유리지갑’인 대다수의 급여생활자들은 물가상승으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특히 물가수준에 비례해 명목소득이 충분히 높아지더라도 과세표준 기준금액이 물가상승률만큼 매년 증가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득에서 차지하는 세금부담의 비율이 커져서 세후소득은 암묵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1988년 이전에 16개 이상으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었던 과세표준 구간을 8개 이하로 축소해서 현행 방식의 과세체계가 시행된 것으로 볼 수 있는 1989년 이후의 기간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정부가 누적된 물가인상을 수시로 과세표준 기준금액에 반영해서 물가상승에 의한 세금부담의 증가를 억제했다. 즉, 1991년, 1993년 및 1996년에 누적 물가상승률 이상의 비율로 과세표준 기준금액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후 2002년과 2005년에는 과세표준 기준금액은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세율을 인하하는 방식으로 세금 부담의 증가를 억제하였다.

그러나 2008년에 과세표준 기준금액이 1200만 원, 4600만 원 등으로 조정된 이후에는 올해까지 15년간 물가 상승을 반영한 추가적인 기준금액 인상이나 세율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기간에는 단지 높은 단계의 과세표준 구간 신설과 최고세율 인상을 통해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강화만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200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의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8%인데, 과세표준 구간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2008년 이후에 급여가 같은 비율만큼 커졌더라도 세금 부담은 훨씬 크게 증가했다.

정부가 이번에 소득세 과세표준 기준금액을 올린 것은 서민·중산층을 중심으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보편적 감세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기준금액 증가율은 2008년 이후의 누적된 물가상승을 반영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충분한 수준의 기준금액 조정에 대해 추가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세제개편안과 같은 부정기적인 구간 조정은 물가상승에 대한 근본적 대응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 주요 국가들은 과세표준 구간을 물가상승률에 연동해서 세금부담을 조정하는 물가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정부도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재무부 규칙을 통해 소비자물가지수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생계비지수(cost of living index)’를 기준으로 소득세의 과세표준 기준금액과 부양비용을 반영하는 각종 공제액을 매년 조정하고 있다. 캐나다와 스위스는 보다 직접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매년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은 미국과 같이 인플레이션 관련 지수들을 기준으로 역시 매년 구간을 조정하고 있다.

정부는 기준금액 변경을 포함한 소득세의 전체 개정 내용을 반영하면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세수가 2조5000억 원 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추가적 세수 감소로 인해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게 된다. 그러나 조세수입과 관련한 소득세의 중장기적 설계는 물가연동을 통한 과세표준 구간의 기술적 조정과는 구분해서, 과세범위, 세율체계 및 지출 구조조정 등에 대한 별도의 종합적 논의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가통계를 통해 확인 가능한 1966년 이후,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인 연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최근과 같은 급격한 변동은 아니더라도 물가는 항상 꾸준하게 상승했고, 이러한 추세는 장래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물가에 연동하는 상시적인 과세표준 구간 변경을 통해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조정할 필요성은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구간 조정을 하는 것은 물가상승에 대한 단편적인 정책 대응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물가연동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물가상승이 부지불식간에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는 연결고리를 차단해야 할 것이다.



전병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