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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현대 의학기술의 ‘진짜 목표’를 묻습니다

입력 | 2022-06-04 03:00:00

◇병든 의료/셰이머스 오마호니 지음·권호장 옮김/344쪽·1만8000원·사월의책




“의료제도가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제이자 사회비평가 이반 일리치가 1975년 출간된 ‘의료의 한계’에서 던진 경고다. 의학이 오히려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당시 의료계는 그를 ‘아픈 사람’이라고 치부했다. 철저히 무시됐던 일리치의 주장은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저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의사 자격을 얻고 영국 의료계에서 일하던 저자는 경력의 정점에서 그동안 누구를 위해 일해 왔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의학기술의 발전과 연구가 환자가 아닌 의학계만을 위한 행위였다고 고발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 대표적이다. 셀리악병 환자들은 글루텐 성분에 민감해 과민성대장염을 앓는다. 하지만 셀리악병이 없어도 과민성대장염 증상을 겪는 환자들도 있다. 몇몇 연구자는 이들 증상의 원인 역시 글루텐이라 주장하며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라는 신종 질병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이러한 질병의 창조가 ‘수백만 명의 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글루텐 무함유 식품의 폭발적 판매 증대로 식품산업에 이익을 안겨주며,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진단명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한다.

현대의학이 암을 다루는 방식도 비판한다. 1971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 암퇴치법’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미국을 암 완전정복 국가로 만들자”고 밝혔다. 이런 구호가 무색한 건 항암제 개발에서 잘못된 지표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지표는 질병은 남아있으나 더 악화되지 않는 기간인 ‘무진행 생존기간’. 저자는 전체 생존기간은 비슷하지만 무진행 생존기간만 늘어나는 신약 임상시험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든다. 신약을 사용하면 암이 더 커지지 않게 할 뿐 생명 자체를 의미 있게 연장시키는 건 아니라는 것.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규 항암제 48개로 생명이 연장된 기간은 평균 2.1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새 치료법이 나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그것 때문에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호스피스 의료, 통증 완화와 치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삶의 상업화, 거대 다국적 기업의 욕망에 가려 간과됐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