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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평화 협상을”vs“러, 대가 치러야”… 금가는 서방 단일대오

입력 | 2022-05-30 03:00:00

전쟁 장기화에 ‘주전파-주화파’로 갈려



러시아 해군 구축함 고르시코프함이 북극해 일부인 바렌츠해에서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을 시험 발사하는 영상을 28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이 두 개 진영으로 나뉘고 있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자유전략센터의 이반 크라스테프 대표는 26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 내부에서 균열이 시작됐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싸움을 중단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협상해야 한다는 ‘평화파’와 러시아가 침략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정의파’로 갈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3개월 넘게 이어지며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항전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이 주전파(主戰派)와 주화파(主和派)로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서방,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리기 시작

우선 우크라이나 영토를 어디까지 회복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우크라이나는 2월 러시아의 침공 이전으로 영토를 되돌린다는 전제하에서만 휴전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8일 “우크라이나는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라며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침공 이전 상태로 영토를 탈환하지 않는 한 휴전협상은 어렵다”며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는 당장의 수복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돈바스 등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지역은 휴전협상 전에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등은 영토 수복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서방 국가에선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을 위해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양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사설에서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모두 되찾는 승리는 현실적 목표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령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핵무기와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신속한 협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키신저 장관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얻으려 하지 말고 조속히 협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핵무기 사용 등)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격변이나 (군사적) 긴장을 일으키기 전에 앞으로 두 달 안에는 협상이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신저의 제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를 달래려는 시도와 같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28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인 ‘치르콘’을 시험 발사해 약 1000km 거리의 목표물을 타격한 사실을 공개했다.
○ 獨·佛 러와 식량봉쇄 해법 논의, 동유럽 비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식량 위기도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 간 균열을 만드는 요인이다.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인 오데사항을 통한 곡물 수출이 막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NHK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흑해를 봉쇄해 수출 곡물의 절반인 2200만 t이 묶여 있다”며 대함 미사일 등 서방의 무기 지원이 추가로 충분히 이뤄져야 식량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방 국가들은 갈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잇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해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 해제 방안을 논의했다. 반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에스토니아는 “프랑스와 독일 정상이 생각 없이 러시아가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를 길을 터주는 것이 놀랍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를 일부 완화해 주는 대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산 곡물 선적을 허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