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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삭감은 위법…대법, 임금피크제 제동

입력 | 2022-05-26 14:38:00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고령 이유로 ‘임금피크’ 적용은 무효”



동아일보DB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이 됐다는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위반이어서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려면 도입 목적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임금 삭감에 상응하는 업무량 감소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예정이거나 시행 중인 기업,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에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 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구 전자부품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91년 전자부품연구원에 입사한 A 씨는 2014년 명예퇴직했다. 전자부품연구원은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A 씨는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았다. A 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게 됐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A 씨의 경우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줄어든 월 급여액수는 성과 평가 결과 최고 등급일 경우에는 약 93만 원, 최저 등급일 경우에는 약 283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는데도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만 감액된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55세 이상 근로자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없었다. 임금피크제 적용 이후에도 이 회사 정년(61세)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사건 재판의 쟁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 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을 위반해 무효인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하급심은 “전자부품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고 볼 사정이 없다”며 A 씨 손을 들어줬다. 1심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A 씨에게 총 1억4600만여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심도 비슷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해당 조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이러한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감축 등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았다”면서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위와 같은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사건의 임금피크제 효력의 인정여부는 대법원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도입 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여부,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