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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받는 무상 태블릿 ‘디벗’ 보급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광화문에서/이서현]

입력 | 2022-04-23 03:00:00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서울시교육청에서 시내 모든 중학교 1학년생에게 태블릿을 한 대씩 나눠준다. 디지털 역량을 향상시킨다는 ‘디벗’(디지털과 친구를 의미하는 ‘벗’의 합성어) 사업이다. 교육청은 학생용으로 약 7만2000대의 스마트 기기를 다음 달 초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첫해인 올해는 중1 학생들이 대상이며 2025년부터는 초등 5학년부터 고3까지 서울시내 모든 학생이 스마트 기기를 1대씩 지급받아 학습에 활용한다.

기기 지급이 본격 진행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만 2년 내내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아이들이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각 학교 방침에 따라 태블릿을 집에 가져가서 학습에 활용할 수도 있다. 게임 등 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도 답답한데, 이제 학교에서 태블릿까지 나눠준다니 디지털 기기에 과다 노출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사업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예산 600억 원을 편성했다. 당장 올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며 많은 학생들이 가정에 이미 스마트기기를 보유한 마당에 예산을 들여 무상으로 태블릿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달 14일 ‘디벗’ 보급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3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기기로 활용할 콘텐츠 구성이 옹색하다는 점이다. 교육청은 태스크포스를 통해 적응 교육 프로그램 11종 등을 개발하고, 학급회의 등 학생 자치활동과 해외 학생들과의 화상회의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학생 1명당 기기 1개를 서둘러 보급할 일인지 의구심이 남는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시기 더욱 벌어진 학생들 간의 격차를 들어 스마트기기 지급이 더 빨랐어야 했는데 오히려 ‘뒷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학습 격차가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급의 전제조건은 어디까지나 학습 격차를 좁힐, 첨단 기기에 걸맞은 콘텐츠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디지털 교육 역량의 민얼굴을 드러냈다. 2년 전 전면 원격수업 초창기 웃지 못할 접속 오류 사태나 수업 시간 때우기용인 빈곤한 콘텐츠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일상 회복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어렵게 쌓아 올린 노하우를 발판으로 공교육의 경쟁력과 디지털 교육 역량을 기초부터 정비할 시기다.

조 교육감과 교육청이 선거를 의식했다는 ‘포퓰리즘 논란’을 불식시키고 싶다면 콘텐츠로 증명하라. ‘무상 태블릿’이 선심성으로 보급된 빈 깡통으로 남을지, 디지털 교육의 전환점으로 남을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할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