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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근하라고요? 계속 재택 안될까요”

입력 | 2022-04-20 03:00:00

[거리두기 해제 이후]
재택근무 익숙해진 직원들 전면출근 꺼려 기업들 고민




“재택근무 끝나면 ‘지옥철’에 시달리며 회사로 출근해 정해진 틀에 따라 눈치 보며 일해야 하는데 갑갑하네요. 아직 회사 공지는 없지만 벌써부터 세상을 다 잃은 기분입니다.”(경기 성남시 판교 소재 정보기술·IT 기업 직원 A 씨)

“전면 출근하라는 지침이 내려오지 않을까 직원들끼리 걱정하며 얘기를 많이 하죠. 이제 업무 약속이 늘 테니 출근은 해야겠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집에서 일하고 싶은데….”(서울 강북 소재 이머커스 기업 직원 B 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최근 전면 해제되면서 근무 형태 전환을 놓고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무실 출근을 재개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미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는 2년 이상 이어진 재택근무는 이미 많은 기업에서 새로운 업무 형태와 직장문화로 자리 잡은 상태다.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각자 생활 패턴에 따라 편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혀 왔다.




재택-출근 병행 ‘하이브리드 근무’… 포스트 코로나 새 직장문화




전면출근 재개 꺼리는 직원들

젊은 직원들 ‘재택=복지’로 인식, 네이버 설문서도 ‘병행’ 가장 원해
SKT-CJ, 시내에 거점오피스 운영… 재택 비율 유지 기업도 상당수
IT업계선 재택이 주요 근무 조건, 재계 “현장직 많은 기업은 달라”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재택근무가 일종의 임직원 복지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근무체제를 모색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전면 출근 체제로 전환한 곳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1일부터 임직원들이 모두 사무실로 출근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임직원들의 요구 등을 반영해 재택근무를 당분간 더 유지하거나 비율을 일부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연착륙’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 ‘혼합 근무’가 선호도 1위, 거점 오피스 만드는 기업도

지난달 네이버가 사내에서 직원 47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선호하는 근무 형태는 ‘재택·출근 혼합’(52.2%)과 ‘주5일 재택’(41.7%) 순으로 나타났다. 40% 이상의 직원이 전면 재택근무를 1순위로 꼽은 가운데 ‘주5일 사무실 출근’을 선호한 직원은 2.1%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설문을 통해 많은 분이 전면 재택이든 하이브리드(혼합)든 결국 재택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개인에게 선택지를 주고 본인에게 최적의 업무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면 업무를 통해 가능한 협업과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되 일정 부분 재택을 활용하는 근무제도를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 거점 오피스를 마련해 임직원들의 장거리 출퇴근 부담을 덜어주는 기업도 속속 생기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달 7일부터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성남시 분당구 등 세 곳에서 거점형 업무 공간 ‘스피어(Sphere)’의 공식 운영을 시작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자체 설문 결과 수도권에 근무하는 SK텔레콤 구성원의 하루 출퇴근시간의 합이 3969시간, 거리의 합은 11만8738km로 집계됐다”며 “근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워크 프롬 애니웨어’ 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CJ도 올해 초부터 서울 용산구, 중구, 경기 고양시 일산에 160여석 규모의 거점 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직원들은 각자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을 선택해 출근한다.
○ “재택근무, 워케이션이 임직원 복지”

SK텔레콤의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거점오피스(스피어)의 협업 공간 ‘빅테이블’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직원들의 장거리 출퇴근 부담을 덜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3곳에 거점오피스를 도입했다. SK텔레콤 제공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 비율을 종전처럼 유지하는 기업도 상당수다. 롯데 이커머스 사업부 롯데온은 이번 주까지 전면 재택근무를 하고 이후에도 50% 이상은 유지할 계획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도 이커머스 사업부 좌석을 직원 수의 80% 수준으로 운영 중이다. 롯데온 관계자는 “꼭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업무만 잘 처리하면 터치하지 않는 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마트도 매주 월요일은 전 직원 재택근무, 나머지 평일은 절반이 재택근무를 하는 체제를 이달 말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계열사인 SSG닷컴도 당분간 재택근무 비율을 70% 이상으로 유지한다.

임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일종의 복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개발자 구인난을 겪고 있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재택근무가 이직 등에서 중요한 근무 조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직이 잦은 개발자 직군은 갑자기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하면 떠나겠다는 사람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CJ ENM은 지난해 10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CJ ENM 제주점’을 열고 한적한 여행지를 찾아 낮에는 일하고 일과 후엔 여가를 즐기는 워케이션(일+휴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처럼 현장 생산직의 비중이 큰 기업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군에서도 재택근무를 허용하기 쉽지 않다”며 “앞으로 근무 형태에서도 전통산업과 IT산업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