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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해 보험료 더 내자”… 佛대선은 연금 개혁이 핫이슈

입력 | 2022-03-24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다음 달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간) 파리 외곽 오베르빌리에에서 정년을 62세에서 65세로 올려 그만큼 연금 보험료를 더 납부하자는 연금 개혁안 등 각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고령사회를 맞아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며 재선에 성공하면 곧바로 추진할 뜻을 밝혔다. 파리=AP 뉴시스

김윤종 파리 특파원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9구에 있는 ‘노령보험 국민금고(CNAV)’를 찾았다. 가입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은퇴 후 연금을 지급하는 곳으로 한국의 국민연금공단과 비슷하다. 프랑스 인구의 약 3분의 1인 2140만 명이 CNAV에 보험료를 내고, 1500만 명의 은퇴자가 연 1440억 유로(약 193조 원)를 수령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CNAV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어서 입구는 철문으로 봉쇄된 상태였다. 시민 마리안 씨(58)는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연금 개혁 논쟁이 한창”이라며 “CNAV 건물의 리모델링처럼 연금제도 역시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마크롱, 62→65세 정년 연장 추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다음 달 10일 실시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같은 달 24일 1, 2위 득표자가 결선 투표를 한다. 2017년 집권한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 극우 레콩케트(프랑스회복운동)의 에리크 제무르 대표, 중도우파 공화당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 중도좌파 사회당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 좌파 녹색당의 야니크 자도 유럽의회 의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주요 여론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30% 내외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까지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다. 이처럼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1차 투표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1위 가능성이 높지만 두 극우 후보인 르펜 대표와 제무르 대표가 단일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결선 투표의 승자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7일 파리 외곽 오베르빌리에에서 재선을 위한 각종 공약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내세운 의제가 법정 정년을 현 62세에서 65세로 올리고 그만큼 연금 보험료를 더 납부하자는 연금 개혁안이었다. 그는 “고령사회에 살고 있기에 과거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2017년과 다른 개혁을 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향후 5년 안에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을 단순하게 만들고 실업보험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실업률은 7.4%로 2008년 이후 14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노령화 등으로 연금 적자 눈덩이


3년 더 일하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22일 발표된 BFM-TV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가 정년 연장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인기 없는 의제를 들고나온 이유는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향후 더 큰 문제를 낳을 소지가 상당하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기준 프랑스 남성과 여성의 기대 수명은 각각 79.2세, 85.3세다. 각각 1980년대보다 6세 이상 늘었다.

고령화, 출산율 하락 등으로 연금을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수령할 사람은 점점 늘어나니 연금 적자 또한 불가피하다. 은퇴자 문제를 연구하는 국가조직 ‘연금오리엔테이션협의회(COR)’는 2030년까지 매년 100억 유로(약 13조5000억 원)의 연금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령보험 국민금고’(CNAV) 건물 앞. 한국의 국민연금공단에 해당하는 곳으로, 지난해부터 리모델링 공사가 실시되고 있어 건물 앞이 높은 철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다음 달 대선의 주요 의제로 꼽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특히 2030년에는 노령연금이 국가 공적 지출의 1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AFP통신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돼 공공 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년 연장을 통해 연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노동계 반발로 수차례 무위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17년에도 대대적인 연금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프랑스는 직업, 직능별로 42개나 되는 복잡한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 종사자는 퇴직 연령이 55.7세로 평균 62세보다 6세 이상 빠르다.

반면 민간기업 근로자는 공식 정년인 62세까지 일한 후에야 연금을 받으므로 수령 시기를 둘러싼 사회 갈등이 상당하다. 특히 국영기업 근로자는 정부 보조 등으로 은퇴 전 월급의 약 70%를 연금으로 받아 수령 액수 또한 타 직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마크롱 정권은 42개 제도를 모두 없애고 수령 시점과 지급 액수를 단일화하는 파격적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9년 12월에는 총파업까지 발생해 나라 전체가 사실상 마비됐다. 당시 프랑스 어디를 가도 교사, 의료진, 경찰, 환경미화원, 대중교통 운전 노조 등이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해 2년간 마크롱 대통령도, 반발하는 노동계도 모두 이 의제를 접어두고 있었는데 재선 도전을 계기로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뜨거운 감자’를 들고나온 것이다.

연금 개혁은 과거 수십 년간 많은 대통령이 관철하지 못한 의제이기도 하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 또한 노동계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주간의 총파업 후 시라크 정권은 심각한 레임덕에 빠졌다. 2003년, 2010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노동계 저항으로 흐지부지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2세로 올린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과다.


경쟁자들은 일제히 비판


마크롱 대통령의 주요 경쟁자들은 일제히 정년 연장 공약을 비판했다. 르펜 대표는 “대통령이 다수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정년 연장을 거부한다”고 했다. 멜랑숑 대표는 아예 ‘정년 인하’를 주창하고 있다. 그는 “60대 고용을 유지하면 젊은 세대의 실업이 되레 늘어난다”며 일자리 창출, 성별 임금 불평등 해소, 사회보장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극우 르펜 대표와 극좌 멜랑숑 대표가 연금 개혁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둘 다 구체적인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크레스 후보는 “정년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나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자가 만난 많은 파리 시민은 ‘연금 개혁이 내키지는 않지만 불가피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리 15구의 40대 회사원 마티 씨는 “평균 수명이 대폭 늘었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후세대를 위해서도 연금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프랑스 정도의 수준 높은 연금제도를 보유한 나라가 흔치 않다며 “나 또한 빨리 은퇴해서 연금 생활자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