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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장택동]사법부의 리스크가 돼가는 대법원

입력 | 2022-03-04 03:00:00

잇달아 도마에 오른 前現 대법원장·대법관들
자성의 목소리 사라진 법원, 위기의식 가져야



장택동 논설위원


법조계에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가 제일 많이 알고, 그다음은 변호사이며, 가장 사건을 잘 모르는 판사가 결론을 내린다”는 말이 있다. 판사가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호할 때도 많다. 판사들로서는 판례와 이론, 양심을 나침반 삼아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가면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재판 제도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법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시민이 판결에 승복을 해야 한다. 최소한 법원이 일부러 한쪽 편을 들거나 외부의 압력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모든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판결을 최종 확정하고 사법행정을 이끄는 대법원이 그 핵심에 서 있다.

그런데 근래 대법원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전·현직 대법원장이나 대법관들이 재판에 회부되거나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정치적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확립하면서 법원의 안정을 이끌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사법부의 리스크가 돼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검찰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영대 전 대법관을 기소했다. 상고법원 도입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법원의 이익을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재판에 관여하려 한 것이 판결을 통해 확인된다면 법원사(史)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 임성근 판사 탄핵과 관련한 정치권 눈치 보기와 거짓말로 또 한 번 파문을 일으켰다. 김 대법원장은 당초 “(임 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여당에서)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돼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9월부터 불거진 대장동 개발 사건에도 전·현직 대법관이 등장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화천대유에서 월 1500만 원을 받으면서 고문을 맡았고, 재임 시절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을 놓고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메가톤급 파장이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나오는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조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조직이 위기 상황을 맞으면 스스로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법농단 때에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열리고 대법원이 진상조사를 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법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법관의 표상으로 존경받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법관은 세상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관은 사법권 독립을 위하여 책임이 큰 것이며, 그러므로 질 수 없는 책임이라도 져야 된다”는 말도 남겼다. 60여 년 전 발언이지만 지금도 울림이 있다. 모든 법관이, 특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