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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는 세련된 편견과 차별이 존재”…은희경이 본 뉴욕의 모습은

입력 | 2022-01-23 11:39:00

‘장미의 이름은 장미’ 뉴욕 배경 연작소설집 펴낸 소설가 은희경




지난해 12월 2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유명 댄스 크루 ‘밥의 댄스숍’ 멤버들이 ‘댄스 플래시 몹’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소설가 은희경(63)은 최근 12년 동안 미국 뉴욕에 자주 갔다. 뉴욕에 살고 있는 가까운 지인 K의 집에 머물기 위해서다. K의 집에 3개월 이상 장기 체류하기도 한 적도 많다. 그리니치빌리지, 센트럴파크, 이스트강, 뉴욕에 자리 잡으려 발버둥치는 외국인, 인종 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뉴요커, 뉴욕의 거리를 채운 각국의 여행자…. 그는 뉴욕의 곳곳을 걷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모든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책이 됐다. 18일 출간된 연작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이다.

20일 경기 파주시 문학동네 사옥에서 만난 그는 “난 뉴욕을 방문하는 여행자이자 짧게나마 살았던 거주자였다”며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도시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새 소설집엔 뉴욕을 배경으로 한 4편의 단편소설이 담겼다. 그가 소설집을 낸 건 2016년 ‘중국식 룰렛’(창비) 이후 6년 만, 신작은 2019년 장편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이후 3년 만이다. “뉴욕은 세련된 도시지만 세련된 형태의 편견과 차별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만큼 도시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이방인의 좌절도 보였죠. 이런 도시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감정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표제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이혼 후 한국 서울에서 뉴욕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온 40대 여성 수진의 이야기다. 수진은 어학원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수강생들과 교류하며 가까워지다가 이내 멀어진다. 수강생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삶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나 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인생을 꿈꾸지 않냐”며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무조건 허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6년만에 소설집을 낸 은희경 작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뉴욕에 대한 환상과 실상을 담았다. 한국에서 계약직 회사원인 젊은 여성 승아는 휴가를 내고 뉴욕에 사는 친구 민영의 집에 방문한다. 민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 휘황찬란한 뉴욕의 모습과 달리 승아가 직접 본 민영의 집은 좁고 허름하다. “저 역시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에 빠져있어요. 게시물로 보는 지인들의 삶은 항상 행복해보이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다 힘든 일을 겪고 있더라고요.”

은희경은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1995)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98) ‘태연한 인생’(2012)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고들던 그의 시선이 이번 소설집에선 조금은 둥그스름해진 것 같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은 한국에서 도망쳐 뉴욕으로 온 작가 지망생의 내면을 차분히 전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선 주인공이 함께 뉴욕을 찾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은희경은 소설을 마냥 따뜻하게 끝내지 않는다. 서로를 오해하던 등장인물들이 이해의 단초를 찾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왜 독자에게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냐고 묻자 그는 조심스레 답했다.

“우린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요. ‘나와 너는 다르다’, ‘내가 네 마음을 몰랐다’는 마음을 지니고 서로 곁에만 있어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휴머니즘 소설이에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