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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차별 철폐 주역 투투 대주교 선종

입력 | 2021-12-27 03:00:00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워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
무지개 국가 꿈꾸며 국민통합 힘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덕적 양심’으로 불리는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명예 대주교(왼쪽)가 2009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이 메달은 국적에 관계없이 세계 평화, 문화 증진 등에 기여한 사람이 받는다. 워싱턴=AP 뉴시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와 맞서 싸운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 시간) 선종했다. 향년 90세. 그는 1994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평화적인 흑백 정권 교체를 이룬 후에도 여러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하자며 국민 통합에 힘썼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그의 선종 소식을 알리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애국자이자 아파르트헤이트와 맞선 지성인이었으며 억압, 불공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겐 연민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애도했다. 또 그의 사망으로 위대한 세대와 작별하는 또 하나의 장이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역시 인종차별 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1993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만델라 전 대통령과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각각 2013년, 지난달 11일 세상을 떠났다. 투투 명예 대주교의 별세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큰 획을 세운 세 인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만델라 재단 또한 성명을 내고 “그의 삶은 남아공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축복이었다”고 추모했다. 이날 남아공 크리켓 국가대표팀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인도와의 경기에서 검은 완장을 착용했다.

투투 명예 대주교는 1931년 요하네스버그 인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53년 당시 백인 정권이 흑인과 백인의 교육 체계를 분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항의하며 사직했다. 1960년 성공회 성직자가 된 후 남아공과 영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1975년 귀국한 후 인종차별 철폐 투쟁에 앞장섰다. 비폭력을 주창했고 국제사회에도 남아공 백인 정권에 대한 제재를 호소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에는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부정부패와 정실 인사 또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중지, 기후변화 대책 마련 호소 등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1997년 전립샘암을 진단받고 긴 투병 생활을 했으며 최근 수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말년에는 참다운 ‘무지개 국가’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며 수차례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