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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상회담서 대만 발표 ‘통편집’…“과도한 中 눈치보기”

입력 | 2021-12-13 14:39: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화상으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0여 개국 정부, 시민사회 전문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세계 곳곳 독재자들의 영향력 확대를 경고하며 이에 단합해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1.12.10. [워싱턴=AP/뉴시스]


미국이 유럽연합(EU)과 세계 110개국을 초청해 9일(현지 시간)부터 이틀 간 화상으로 개최했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대만 대표의 발표 도중 영상 송출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만 대표가 대만과 중국을 별개의 국가로 표시한 지도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우자 백악관이 영상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가 12일 보도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중국과 대만은 하나)’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부 장관은 이번 정상회의 화상 발표 시간에 대만 민주주의에 대해 발언하면서 세계 지도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민단체인 세계시민단체연합회(CIVICUS)가 각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현황을 색깔로 표시한 지도였다. 여기서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장 높은 단계인 ‘개방형 국가(초록색)’로 표시됐다. 반면 중국은 가장 낮은 단계인 ‘폐쇄형 국가(빨간색)’로 표시됐다. 대만과 중국을 별개 국가로 구분한 것이다.

로이터는 “탕 장관이 1분간 이 지도를 화면에 띄우며 대만의 민주주의를 설명하자 갑자기 화면이 검은색으로 바뀌면서 영상 송출이 중단됐고 탕 장관의 목소리만 들렸다”고 전했다. 대신 검은색 화면에는 ‘참석자들의 주장은 모두 개인의 의견이며 미국 정부의 견해와는 무관하다’는 자막이 나왔다. 탕 장관의 발표 일부가 사실상 ‘통 편집’ 된 것이다.

그간 미국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은 만약 중국이 ‘대만 통일’을 위해 대만을 침공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왔던 미국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혀왔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두고서도 미국이 중국의 눈치를 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와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는 맥락을 감안하면 대만 발표자에 대한 이런 조치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이번 회의에 공식 초청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번 미국의 대응은 과잉 대응이었다. 권위주의에 대항하자면서 개최한 회의에서 이러한 행동은 회의 취지와 충돌한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 국무부는 “화면 송출에 혼선이 있어 탕 장관의 영상이 삭제됐다. 명백한 실수”라면서 “대만의 투명한 통치와 인권, 허위정보 대응 문제에 대한 세계적 전문성을 보여 준 발표”라며 대만을 달래는 듯한 해명을 내놨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