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위령비 76년만에 제막
6일 일본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열린 나가사키 원폭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흰 천을 걷어내며 위령비를 공개하고 있다. 나가사키=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6일 오전 11시 2분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서쪽 입구에 모인 100여 명이 1분간 고개를 숙였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숨진 약 1만 명의 한국인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76년 만에 세워져 제막식 참가자들이 묵념을 했다. 역시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에는 1970년 한국인 위령비가 건립됐지만 나가사키에는 없어 우리 정부와 동포 사회가 오랫동안 노력을 들인 끝에 결실을 봤다.
이날 제막식에는 강창일 주일한국대사,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무카이야마 무네코(向山宗子) 나가사키 시의회 의원 등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검은색 바탕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란 금색 한자가 새겨진 3m 높이의 위령비에 헌화했다.
위령비 뒷면에는 다시 고국 땅을 밟으리라는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표식 하나 없이 이국 땅에 한 줌의 흙으로 남은 한국인 희생자를 기린다는 추도문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졌다. 아래 부분에 있는 2개의 네모 모양 돌에는 위령비를 세운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3개 국어로 쓰여 있었다. 오른쪽에는 일본어와 영어, 왼쪽에는 한국어로 쓰였다.
다만 비문 아래에 있는 영어 설명에는 ‘forced to work(강제로 노역했다)’란 표현을 넣어 강제성을 좀더 명확히 드러냈다. 강성춘 위령비 건립위원장은 “영어로라도 ‘강제’ 표현을 남긴 것이 의의”라고 했다. 히로시마 위령비에는 ‘강제’ 관련 내용이 없다.
19세 때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km 떨어진 집에서 피해를 당한 피폭 1세대 권순금 할머니(95)는 5일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평생 위령비 건립을 소망했지만 몸이 불편해 이날 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무릎 통증 등 여러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제막식에는 일본 고교생 평화대사 학생 30여 명도 참석했다. 내년 한국 유학을 앞둔 오쿠마 유카 양(18)은 “그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일본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