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DNA/앤드루 로버츠 지음·문수혜 옮김/352쪽·1만8000원·다산북스
영화 ‘덩케르크’(2017년)는 승전의 환희가 전혀 나오지 않음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절망의 나락에 빠졌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지도자와 병사들의 치열함이 담겨 있어서다. 실제로 독일군에 밀려 고립된 영국군을 본토로 귀환시킨 덩케르크 작전(1940년 5∼6월)은 “오늘의 철수는 위대한 승리”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반전의 계기가 됐다. 독일군의 전광석화 같은 전격전(blitz)에 희생될 뻔한 20만 명의 연합군 병력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전쟁사학자가 쓴 이 책은 처칠,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등 전시 지도자 9명의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과연 이들의 어떤 면모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분석한다. 이 중 처칠의 덩케르크 철수 결정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주도하는 리더십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처칠은 프랑스 방어에 영국 공군을 동원해달라는 동맹국의 간곡한 요청을 단칼에 뿌리친다. 유럽 대륙에서 독일군을 막아내기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칠은 ‘영국군을 후퇴시킨 무능한 총리’라는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덩케르크 철수를 밀어붙였다. 저자는 역사 덕후였던 처칠이 당시에 신경 쓴 건 의회나 여론이 아닌 훗날의 역사적 평가였다고 말한다. 여론에 일희일비하며 정책을 수시로 뒤집는 포퓰리즘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