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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시장 설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동아광장/이지홍]

입력 | 2021-11-05 03:00:00

입장차 드러난 기후총회, 40%감축 약속한 韓
中과 탄소가격차, 韓 기업 경쟁력 낮춰
정부 주도 전력시장 설계, 시장 참여로 해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다. 시장경제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수학하고 가르친 글래스고에서 시장 실패의 상징인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하려 세계 정상들이 모인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에서 출범한 인류의 공동전선은 ‘공유지의 비극’이란 난적한테 연전연패 중이다. 30년 전 220억 t 규모였던 탄소배출량은 그 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최근엔 360억 t을 넘어섰다. 중국 혼자 매년 100억 t이 넘는 탄소를 내뿜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 차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이번 모임에서도 뚜렷한 성과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선진국 체면 차리기라도 하듯 대폭 상향된 감축목표를 덜컥 약속해 버렸다. 2018년 대비 26.3%가 아닌 40% 감축을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한다. 탄소는 주요 에너지원이자 핵심 생산요소이기 때문에 배출량 감축은 곧 비용 상승을 의미한다. 한국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t당 시세는 3만 원 수준이다. 유럽보단 낮지만 t당 3달러에 불과한 글로벌 평균, 특히 이웃 중국에 비하면 한참 높다. 만일 중국과의 탄소가격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줄고 중국 기업의 생산량은 그만큼 늘어 한국과 중국의 합산 탄소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이 ‘탄소 누출’ 현상이 최근 유럽연합(EU)이 도입하기로 한 ‘탄소국경세’의 주된 이유다.

적절한 감축목표의 책정도 글로벌 관점에서 심사숙고할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다. 기존 생활수준을 유지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데, 관건은 발전(發電)이다. 한국은 ‘전원믹스’라고도 불리는 전력 공급원 구성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해 전력 수급과 탄소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시장경제와 공생하는 계획경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화력과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한 세계 수준의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며 한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에 일조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을 천명한 지금 계획경제의 한계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전기는 사실상 저장이 불가능하다. 반면 사회의 요구는 한시도 끊이지 않는다. 언제든 불을 밝히고 컴퓨터를 켤 수 있다는 걸 모두 당연하게 여긴다. 누군가 항상 전기를 만들고 동시에 배달까지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력 수요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예측불허 상황은 용납되지 않는다. 비싸도 안 된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이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탄소 감축이란 새로운 어젠다가 더해졌다. 정부는 총발전량 40% 정도를 담당하는 석탄의 비중은 줄이고 대신 가스와 재생에너지를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날씨에 의존하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은 안정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한국은 지리적 비교우위도 없지만 행여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전기가 남아도는 것도 문제다. 송·배전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량 또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잉여 전력은 계통 운영자 입장에선 골치 아픈 딜레마다. 누군가는 발전을 멈춰야 하는데 모든 공급을 한국전력공사가 도맡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민간발전사가 껴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급격히 늘린 제주도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가스는 석탄에 비해 비싸지만 탄소배출량이 적고 재생에너지처럼 불확실하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 탈석탄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급등해 경제성이 추락하고 있다. 아주 깨끗한 것도 아니다. 한국은 전력 소비가 큰 제조업 의존도가 유난히 심하고 중국과는 국가 존망을 놓고 경쟁 중이다. 국력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가격, 안정성, 온실가스 모든 면에서 메리트를 가진 원전은 줄이자고 한다. 새로운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나오는 무탄소 가스터빈은 또 뭔가.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보니 정치가 집어삼킨 전력 수급 계획의 신뢰도는 바닥을 기고 있다.

정부 주도 계획경제로는 더 이상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공급과 에너지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의 난도와 정부 실패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시장의 중요한 순기능은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의 분산된 의사 결정에 의한 지식과 정보의 수렴이다. 정부는 납득할 만한 탄소가격 설정,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확보 등 공공의 필수 역할에 집중하고 전원믹스는 보다 자연스럽게 결정되도록 전력시장 설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시점이 왔다. 시장 실패의 극복도 시장과 함께 해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