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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대응’ 외치던 바이든, 석유증산 요구…졸음과 사투 벌이기도

입력 | 2021-11-02 13:41: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사과했다. 전임자의 정책 결정에 대해 후임 지도자가 주요국 정상들을 상대로 대신 사과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기도 한 기후변화 대응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글래스고 협의, 세계 역사의 변곡점”


CNN방송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의 ‘행동과 연대’ 세션 연설에서 “내가 사과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미국이 지난 정부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 결정은 우리를 난관에 처하게 했다”고 인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고, “지구 온난화 주장은 중국 등이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 만들어낸 사기”라고 주장하며 기후변화를 부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인들이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해 둔감했다는 점도 자인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4, 5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가 진짜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며 “그들은 이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변화들을 목격했고, 끝내 우리 모두가 처해있는 시급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총회 전체 연설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은 국제사회가 도덕적, 경제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래스고에서의 기후변화 논의가 ‘전 세계 역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며 “우리가 이 순간의 기회를 붙잡는 데 실패한다면 그 누구도 아직 닥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미국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50~52% 줄이고, 2050년까지는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회복 및 적응을 위한 대통령 긴급 계획(PREPARE)’ 프로그램을 발족하고 2024년까지 연 3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전날 백악관의 발표 내용도 재차 설명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막상 국내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예산 확보에 고전하고 있다. 그는 청정에너지 기업에 총 5550억 달러의 세금 감면과 인센티브를 주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민주당 내부의 분열과 공화당의 반대 등에 막혀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3조5000억 달러 규모로 제시했던 사회복지 예산안에 들어있는 내용으로, 예산 규모가 최근 협상 과정에서 1조5000억~2조 달러 수준까지 줄어드는 과정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언제 처리될지는 안개속이다.


●기후변화 대응 역설하며 석유 증산 요구?



바이든 대통령이 COP26 회의 직전까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석유 증산을 요구한 것을 놓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석유시장의 불안정성이 인플레이션 현상과 맞물리면서 휘발유값이 급상승하자 8월부터 OPEC에 증산을 요구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표면적으로는 역설(irony)처럼 보인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하룻밤 사이에 재생에너지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우리가 당장 올해 안에 혹은 내년에라도 석유나 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현실적인 한계도 언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예산안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2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아직 없애지 않고 있다. 유가 상승과 이로 인한 기업들의 부담 증가, 이를 문제삼는 공화당의 공격 등을 감안한 예산 정책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장기적으로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를 늘릴 것이라는 점을 이날 함께 강조했다. 존 케리 국무부 기후특사도 기자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석유를 쓰지 않겠다며 당장 지구상의 모든 경제활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시점에 석유 증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를 놓고 뉴욕타임스는 “산업화 이후 글로벌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어온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이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COP26 회의 도중 눈을 감은 채 조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일부 언론들은 78세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의 체력적 한계를 이유로 든 반면,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는 “기후변화가 실존하는 위협이라면서 막상 본인은 회의 시간에 졸고 있다”는 비판을 내놨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