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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차용증 ‘꼼수’

입력 | 2021-10-06 03:00:00


검찰은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의 핵심인 유동규 씨(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서 5억 원, 위례신도시 사업자로부터 3억 원, 이렇게 모두 8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그러나 유 씨는 “뇌물은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 대신 자신과 동업 중인 정모 변호사로부터 사업자금과 이혼 위자료 명목으로 11억 원을 빌렸다고 해명하고 있다. 뇌물이 아니라 차용증까지 쓴 정상 거래라는 것이다.

▷차용증은 선거철에도 종종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한 구청장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지역구 의원 동생 P 씨로부터 “공천 대가로 10억 원 차용증을 작성하라는 메모를 받았다”고 폭로한 것. 법적인 시비를 피하기 위해 차용증을 쓰지만 사실상 10억 원을 공천헌금으로 내라는 얘기다. 해당 의원 측은 “공천에서 떨어지니까 흑색선전을 한다”고 반박했지만 P 씨는 구속 기소됐다.

▷가족 간에 돈을 주고받을 때도 증여세를 물지 않으려면 차용증을 써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차용증을 썼다고 해서 모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금 출처나 변제 방식이 설득력이 없으면 차용증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취급된다. 지난해 국세청의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에 따르면 고가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산 직장인 A 씨는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30년간 갚기로 했다는 차용증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A 씨의 경우 소득에 비해 상환해야 할 액수가 너무 컸다. 결국 국세청은 이 차용증을 가짜로 판단했고, 수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다시 대장동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유 씨가 썼다는 차용증을 액면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신고 재산이 2억 원에 불과한 유 씨에게 11억 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빌려주는 것이 정상적인 거래인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유 씨는 지난해 말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마땅한 직업도 없는 상태다. 이렇다면 11억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제대로 상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또한 돈을 빌려줬다는 정 변호사는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유 씨의 수족처럼 움직였다. 두 사람이 차용증을 썼다고 해도 별도의 이면 계약을 했을 거라고 추정할 만한 이유다. 그동안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유 씨의 해명은 대부분 검찰 수사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유 씨가 대장동 개발 대가로 700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녹취파일도 단순히 농담으로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검찰이 이 차용증의 진위를 어떻게 가려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