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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동아광장/최인아]

입력 | 2021-09-04 03:00:00

에너지 넘치는 삶에 꼭 필요한 자기 결정권
피로를 잊고 새로운 도전 가능케 하는 힘
야구감독도 잘 치는 타자에겐 사인 내지 않아
주도권은 자신 입증한 사람이 누리는 권리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우리 책방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하는 사람이 핵심 고객인 만큼 일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중심을 이루지만 한 인간이 계속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과 영혼을 살피는 콘텐츠도 꽤 많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죽음’에 관한 강연이다. ‘사느냐 죽느냐, 어떻게 죽느냐’라는 주제의 시리즈 강연.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묻는 게 아니라 존엄한 죽음을 맞는 현실적 방법을 모색하는 취지였으므로 현직 의사분들을 강연자로 모셨다. 그때 오셨던 분 가운데 A병원의 K 교수 말씀이 오래도록 남는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 평소 의식이 명료할 때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정해 두라는 얘기였다. 그래야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가족이나 의사의 뜻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고.

‘자기 결정권’이 어찌 죽음 앞에서만 중요하랴. 오히려 에너지 넘치게 일하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 좋은 예를 반년 전에 회사를 옮긴 후배한테 또 한번 확인했다. 같은 업종의 이직이므로 업무는 비슷하지만 직급이 높아져 업무량도, 건사해야 할 직원도, 책임도 커졌다고 했다. 출퇴근 거리마저 배로 늘어 훨씬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고. 이상한 것은, 지치기는커녕 신이 난다는 거다. 본인도 야릇해서 이 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봤단다. ‘자기 주도권’이라고 했다. 물론 그에게도 상사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의 자신이 결정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에너지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는 나도 겪은 일이다. 책방을 열기 전 광고회사에서 오래 일했다. 물론 재밌게 열심히 일했지만 광고는 클라이언트를 모시고 하는 일이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분들의 승인이 있어야 제작되고 집행되었다. 보고 과정에서 죽어가는 아이디어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책방을 여니 최종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것이 크게 기뻤다. 설거지를 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로 새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운전을 하다 퍼뜩 생각이 스치면 그걸 발전시켜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쟁이의 생각 법’, ‘팀장은 외롭다’, ‘싱글들 모여라’ 같은 프로그램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밤 10시에 책방 문을 닫고 집에 와 새벽 서너 시까지 노트북을 두드리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내가 신기해 내게 물었다. 피곤할 법도 한데 계속 재밌어하며 새로 시도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고.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내 생각대로 할 수 있고 하니까 되더라는 것. 그것이었다.

여기까지 읽으신 직장인들이 혹시 ‘그것 봐, 맡겨줘야 한다니까’ 혹은 ‘역시 자기 주도권은 직급이 높거나 자기 사업을 해야 가능한 거지’라고 생각하실까 봐 덧붙인다. 아직도 우리 일터에선 직급이 깡패가 되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늘 직급으로 되는 건 아니다. 직급이 낮아도 그 일의 핵심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해법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일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런 레코드가 쌓이면 그 친구는 상사의 잔소리나 불합리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고 성과를 내는 곳이므로 일 잘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옮겨가기 마련이다. 야구는 순간순간 감독의 작전 지시가 많은 종목이지만 잘 치는 타자에겐 별다른 사인을 내지 않는다. 잘하는 선수한테 맡기는 거다.

사는 동안,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자기 주도권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자신을 입증해 보인 사람만이 누리는 권리요, 권한이다. 특히 일터에서는 말이다. 맡길 만해야 맡기는 거고 잘 해내야 계속 맡길 수 있다. 이 문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어서 일을 지시하는 사람과 하는 사람 간의 신뢰, 역학 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긴 어렵지만 알고 보면 윗사람도 후배 직원이 알아서 스스로 일하기를 바라며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이 드물고 시키는 것만 겨우 하니 자꾸 챙기게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겠다.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멋지게 잘 해내는 것. 그러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고 직급에 꿀리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혹시 ‘나는 자기 주도권 같은 거 원치 않아. 가늘고 길게 갈래’라고 생각하는가? 음, 그건 다음에 새로 이야기해야겠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