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90세 우공, 36세 이준석[오늘과 내일/김승련]

입력 | 2021-06-23 03:00:00

산을 옮기겠다던 노인이 진짜 리더
청년들이 우공다운 후보 선택해야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얼마나 어리석었기에 어리석을 우(愚)로 불렸을까. 그럼에도 내년 대선 후보로 우공(愚公)을 추천한다. 건넛마을로 가는 길이 산에 가로막히자 한 삽씩 떠내어 산을 옮기려 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주인공 말이다. 2000년 전 우공에게서 좋은 리더의 자질을 본 건 (담대한 토목공사 구상이 아니라) 나이 때문이다. 과장된 숫자겠지만, 그는 90세 노인이었다. 생전에 결실을 못 볼 게 뻔한데, 그는 30년 역사(役事)를 도모했다. 삽 한 자루로 산을 옮기자 했으니 마을에서 인심을 얼마나 잃었을까.

우공이 어렵다면 ‘우공 같은’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 우공답다는 건 두 가지다. 자기 임기 5년만 생각하는 근시안을 벗어나느냐. 여기에 미래의 예산까지 정직하게 설명하는 용기가 있느냐다.

이 시대에 사라져버린 우공은 조롱받기까지 한다. 청와대와 여의도에서 “다음 선거만 생각하면 정치꾼(politician)이요,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정치가(statesman)”라고 했다간 외계인 취급받기 십상이다.

우공은 선거 때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해고를 쉽게 해 일자리를 늘린 노동개혁(독일), 튼튼한 재정을 위해 연금과 세금을 더 걷은 재정개혁(프랑스, 캐나다)을 주도한 총리들이 그랬다. 꼭 필요한 정책을 폈건만 예외 없이 다음 선거에서 졌다. ‘우공’의 부재는 정치인 탓만 할 건 아니다. 언론이 좀 더 우공다움을 높게 평가했더라면, 유권자가 좀 더 깨어 있었더라면 달랐을 수 있다.

올 초 채널A에 출연한 국민의힘 의원이 여당 때 예산을 매년 4%밖에 증액시키지 않은 점을 후회하는 걸 지켜봤다.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평균 9% 정도 정부 씀씀이를 키웠다. 필요한 사업일 순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써야 할까 싶은 사업들이 적잖다. 가덕도 공항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났고, 총선 땐 토목공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가 줄줄이 면제됐다.

우공의 정신은 정책의 포장 기술을 거부한다. 더 좋아 보이면서도, 돈 덜 드는 것처럼 만들지 않는 자존심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는 데 30년간 금 30냥이 든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살날이 5년쯤 남았으니 금 5냥이면 된다. 그 후론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벌어진다. 의료보장 혜택을 크게 늘린 문재인 케어는 임기 5년간 30조 원이 소요된다고 설명됐다. 그러나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는 이후 10년, 20년 뒤 얼마나 더 부담이 필요한지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누리는 사람과 부담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데서 시작된다. 훗날 빚을 갚아야 할 2030세대는 관심도 부족하다 보니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다. ‘어리석을 리 없는’ 정책 입안자들은 슬쩍 넘어가곤 했다. 이제 36세 청년 당 대표가 뽑혔고, 25세 대학생이 청와대 청년비서관에 임명됐으니 달라질 수 있을까.

2030세대가 대선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로 우공다움을 제시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또래 청년 유권자들은 질문을 던지고, 후보들은 답해야 한다. △나랏돈이라고 허투루 쓰는 건 아닌지 △효과는 부풀리고 비용은 줄인 게 없는지 △임기 이후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후보가 먼 미래를 위한 비전을 지녔는지 우공다움이 드러날 것이다. 2000년 전 90세 촌로의 선택이 우리 2030세대의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