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들이 앉아 있다.© 뉴스1
“완전 땡볕이야. 여름철에 이렇게 있으면 사람 죽어요.”
올해 중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전영호씨(53·가명)의 말이다. 다른 노숙인들과 길바닥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던 그는 “나도 7번이나 쓰러졌다”며 때 이른 무더위에 고통을 호소했다.
광장과 붙어있는 노숙인 지원시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가리키자 전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못 들어간다”며 “옛날에는 저런 쉼터에 200~300명씩 들어가서 에어컨 틀어주면 시원하게 잤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해 더 힘들다”고 했다.
이들은 여름에 다가올 무더위와 장마를 걱정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는 이들은 날씨와 환경에 취약하다. 노숙인들은 여름이 되면 더운 거리를 침대 삼고, 비바람을 이불 삼는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이 터진 지난해부터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던 노숙인 쉼터 등의 출입이 제한됐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건축일 등 일거리가 사라졌다고 이들은 토로했다.
노숙인들이 여름을 수월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쉼터, 급식소 등 지원센터에 출입하는 방법 정도만이 존재한다. 문제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음성확인서’를 시설에서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검사결과를 통보받기 위한 휴대전화가 없는 노숙인이 많고, 매번 검사를 받는 일도 번거롭다는 이유 등으로 지원받기 자체를 포기한 노숙인도 많다.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날씨 등 환경에 더욱 취약해진 이유를 지원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코로나 검사는 밀접접촉이 의심된다든지, 확진자와 함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가 지난달 거리노숙인 쉼터 5곳에 전신자동살균기를 설치한다고 발표한 ‘약 5개월간 여름철 종합대책’이 “노숙인들에겐 모욕적인 일”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등 유행병이 도는 상황에서 단순히 쉼터 방역을 철저히 해 노숙인들을 들이는 방법은 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말 서울시에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숙인의 생존·안전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하라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 결정문에는 일시적 잠자리 제공시설의 ‘과밀 수용’ 문제 해결 및 급식 양·질 개선과 횟수 확대 등이 담겼다.
이 활동가는 “무더위 쉼터도 노숙인을 집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지난해 서울시가 취약계층노인을 위해 운영한 ‘무더위 안전숙소’ 등의 방식을 쓰면서 궁극적으로는 주거기준법에 근거한 최저주거기준에 맞춘 서비스를 노숙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와 함께 있던 20년차 노숙인 김준호씨(45·가명)도 “천막으로라도 쉴 곳을 설치해주고, 코로나 안 걸리게 칸막이 설치만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라며 “재정 지원 대상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에 해당하고, 절차도 복잡해서 신청 못 한다”고 했다. 전씨는 “오세훈 시장이 나설 때”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