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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학대’ 세상에 알렸는데…“고통만 더 커졌다”

입력 | 2021-06-01 06:41:00

어린이집 교사, 장애아동 학대 혐의받아
피해아동母 "그날의 기억, 여전히 고통"
"다른 학부모, 어린이집 휴원 걱정부터"
1일 첫 재판…"'초범이어서 감형 걱정"
"뇌병변 아이 130회 때리는게 실수냐"




 “저희는 피해자인데 사건 이후 오히려 죄인처럼 지냈어요.”

뇌병변장애 2급 아동인 A(6)군의 어머니 B씨는 밤새 편히 잠을 자지 못한다. A군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더라도 새벽에 10번 넘게 깨곤 하기 때문이다. 악몽을 꾼 듯 울면서 힘들어하는 A군을 볼 때면 B씨는 맘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한다. 장애로 인해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A군이지만 B씨는 아들이 잠들지 못할 정도로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알 수 있다.

아이 상태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가을. A군은 지난해 8월부터 다닌 경남 사천시 국공립 장애전담 어린이집에서 교사 2명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B씨는 약 한달 뒤인 9월 아이 머리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 영상을 요청했다. 영상을 확인한 이후엔 상습 학대 정황이 의심돼 어린이집 관계자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CCTV 확인 결과, 담임교사는 뇌병변뿐 아니라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주먹, 컵으로 지난해 8월10일부터 9월15일까지 130여차례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1일 뉴시스에 “학대 의심 기간 CCTV 영상을 통해 확실히 확인된 학대 횟수만 최소 80회 이상”이라며 “언어치료실에서는 주먹으로 머리를 7번 때리고, 컵으로 3번 때리는 등 아이 목이 꺾일 정도로 상습적으로 학대하는 장면이 기록됐다”고 전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약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약 3개월째 자비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학대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와 떨어지길 무서워하는 분리불안도 느낀다. B씨는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적응장애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이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사건 직후 교사들의 사과는 물론, 같은 학부모의 협조도 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린이집이 아동학대로 조사를 받게 되면 휴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몇몇 학부모들은 보육 공백부터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사천시청에는 ‘휴원을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학부모 탄원서가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가해’도 있었다고 B씨는 전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B씨의 문제제기에 ‘A군이 밥을 먹지 않아서 훈육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을 통해 사건을 공론화한 뒤엔 ‘이래서 장애인은 집에서 돌봐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B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선 교육을 받고 또래 친구들과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며 “담당 의사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조언을 해서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를 보낸 건데 오히려 우릴 무책임한 부모로 만들어버리더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전담 어린이집은 아이들 특성을 고려해 일반 어린이집과 달리 교사 1명당 3명 아이를 돌보게 하는데 아이를 방치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희망’인 재판을 위해 움직인다. B씨는 엄벌을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500여명에게 받아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아동학대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법정에서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동을 학대하거나 학대를 방임한 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은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는 자격정지 6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다.

영유아보육법 제39조 제2항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에 대한 행정처분의 세부기준’에 따르면 ▲영·유아에게 중대한 생명·신체 또는 정신적 손해를 입힌 경우 자격정지 1년 처분을 내릴 수 있는데, 이같은 행위가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 따른 아동학대인 경우 자격정지 기간은 2년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사천시청은 이번 사건이 살인·유괴 등 중대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기준 대신 다른 기준인 ▲비위생적인 급식을 제공하거나 영·유아 안전 보호를 태만히 해 영유아에게 생명·신체 또는 정신적 손해를 입힌 경우를 적용해 6개월 자격정지 처분만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법정에서도 학대 혐의를 받는 교사들에 대한 엄벌로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근 5년간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1심 선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실형 선고보다 집행유예 선고가 2~3배가량 많았다.

B씨는 “아이가 말을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상습적으로 학대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초범이라는 이유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감형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달 동안 130회 걸쳐, 그것도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때리는 건 선처가 허용되는 단순 실수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군 사건 1차 공판은 이날 진주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어린이집 교사 2명은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 특례법 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어린이집 원장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교사들은 A군을 약 한 달에 걸쳐 학대하거나 방치한 혐의를, 원장은 이를 알면서도 방관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