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1991년 태어난 럭비남은 명품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새로운 소비권력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남성들의 초혼 평균 나이는 29.3세로 대개의 남성은 어린 자녀를 양육하느라 30대를 가족을 위해 바쳤다. 하지만 지난해 남성 초혼 평균 나이는 33.2세로 30대에도 결혼을 미루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오직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경향이 강한데 그 중심에 럭비남이 있다.
▷럭비남은 핵가족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애(愛)와 개인주의가 몸에 뱄다. 가정을 늦게 꾸리다 보니 여유롭게 자신을 위한 럭셔리 소비를 할 수 있다. 의상심리학에서는 이런 소비자를 ‘패션 에고이스트(패션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럭비남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패션을 정보로서 습득할 기회도 많다. 혼술 혼밥 혼영(혼자 영화) 혼캠(혼자 캠핑)에 이어 ‘즐거운 혼쇼(혼자 쇼핑)’가 가능해진 이유다. 애인과 동행하지 않고 나만의 안목에 따라 쇼핑을 한다. 한동안 여행 등 무형의 경험을 중시하던 소비가 코로나19를 맞아 럭셔리 제품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경기 판교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자들의 연봉이 크게 오르면서 ‘판교 럭비남’이 서울 럭셔리 매장들의 주된 손님으로 등극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주식시장이 좋으면 럭비남의 씀씀이도 커진다. 이들의 소비는 시장 파급효과도 일으켜 결혼해 아이가 있는 30대 남자와 20대 남자의 럭셔리 소비까지 늘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소비는 일종의 보복 소비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못 하는 데 대한 보복이요, 힘들게 돈 모아봤자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 현실에 대한 보복이다. 자유롭고 도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소비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