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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덩치만 키운 인터넷은행들, 중금리 대출 초심 잊었나

입력 | 2021-04-03 03:00:00


박희창 경제부 기자

2016년 7월 6일 경기 성남시 카카오 사옥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2차 현장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나왔던 발언들을 복기한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이들이 꽤 있다. 윤호영 당시 카카오뱅크 공동대표는 “기존 은행 데이터에 카카오 데이터를 넣어 새로운 신용평가 모형을 만들어 중금리 대출에 활용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았던 안효조 케이뱅크 대표는 “중금리 대출 금리를 연 10%대라고 했는데 이건 높은 것이고 5, 6%대도 나올 것 같다”고 한술 더 떴다. ‘차별화된 신용평가’라는 단어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4년 9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금융위원회는 최근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중금리 대출 비중 확대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화려한 구호로 포장된 중금리 대출 약속이 지켜졌다면 필요 없을 일이다. 금융위는 올해 초 중금리 대출 상품 활성화를 주요 업무계획으로 내걸었다. 중금리 대출 확대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취지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들이 신용도 높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중금리 시장의 ‘메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직후부터 ‘양치기 소년’이 됐다. 카카오뱅크가 문을 연 지 두 달여 만에 1∼3등급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로 다뤄졌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올해 2월 나간 카카오뱅크의 전체 일반신용대출 가운데 금리 연 4% 미만의 대출 비중이 74.7%였다. 케이뱅크는 48.5%다.

금융당국도, 인터넷전문은행도 외쳤던 ‘중금리 대출’ 구호가 여전히 공허한 이유는 따로 있다. 중금리 대출이 성공하려면 대출자의 신용 리스크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기존 평가 모델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적정한 금리의 대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현실은 구호처럼 간단치 않았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신용평가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의미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털어놨다. 중금리 대출을 늘리는 게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는 고민이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경제학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논란이 일자 다음 날 임세은 청와대 부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중금리 대출 시장에 흡수될 수 있는 여러 조치를 보완하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고금리와 사채,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안타까움은 진심이라 믿고 싶다. 정부가 말로만 ‘중금리 대출 확대’를 외쳐봐야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왜 초심을 잃었는지 실패 경험을 들여다보고 근본적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문 대통령의 진심을 전달하는 출발점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