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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연안부두… 소설 속 인천은 어떤 모습일까?

입력 | 2021-02-19 03:00:00

‘소설 속…’ 산문집 낸 양진채 작가
인천 배경으로 한 소설 23편 선정
5·3민주항쟁-삼미 슈퍼스타즈 등
작품 속 인천의 역사-일상 소개




여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수인선 협궤열차의 선로. 양진채 작가 제공

윤후명의 장편소설 ‘협궤열차’, 오정희의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 이원규의 단편소설 ‘포구의 황혼’, 김경은의 중편소설 ‘개항장 사람들’,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수인선, 차이나타운, 송도유원지, 연안부두, 부평 미군부대, 강화도 건평포구 등 인천 곳곳의 풍광과 정취가 담긴 소설들이다. 인천을 소재로 한 10여 편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한 양진채 작가(55·인천 화도진문화원 사무국장·사진)가 다른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인천을 발굴해 보는 ‘소설 속의 인천―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 산문집을 17일 펴냈다.

양 작가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간된 소설 중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23편을 선정해 자신의 시선으로 작품 설명을 하는 한편 인천의 역사와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산문집 첫 장에서는 1992년 출간된 윤후명의 ‘협궤열차’를 등장시켰다. 그는 “소설(‘협궤열차’)을 읽어 가면 송도역, 안산 갯벌, 소래포구 등 소설 속 인물과 공간이 한없이 동화적으로, 때로는 쓸쓸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소설의 문장 중 인상적인 장면도 전해주고 있다.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 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렇게 작은 기차여서 트럭이나 소와 부딪쳐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소설 속 등장인물 간 대화를 통해 알려준다.

양 작가는 “명색이 기차가 소와 부딪쳐 넘어질 정도라니 그 기차는 결핍 혹은 외로움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해석했다. 협궤열차의 역사도 간략히 정리해 놓았다. 일제강점기에 선보인 협궤열차는 1994년 운행을 중단했고, 인천∼수원 전 구간 복복선 공사를 완료한 2020년 9월 완전 재개통됐다.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된 옛 협궤열차는 지난해 11월 인천시립박물관 마당에 전시됐다.

산문집에서는 1960년대 말 부평 에스컴 미군부대 근처의 클럽에서 노래하던 가수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목연의 단편소설 ‘거기, 다다구미’를 통해 대지 면적 200만 m²가 넘던 미군부대와 주변에 살던 서민들의 가난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

오정희의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를 통해서는 비의로 가득 찬 차이나타운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양 작가는 “소설 속에 차이나타운, 부두, 대한제분 공장, 자유공원, 공설운동장, 석탄 나르는 철길 등이 작가 특유의 아름답고 서늘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전체 정조는 아릿하고 슬픈, 불안한 눈비 같은 것인데 이는 전쟁 직후의 불안정한 삶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또 20대 때 인천에서 공장을 다니며 노동운동을 했던 양 작가의 자전적 중편소설 ‘플러싱의 숨 쉬는 돌’에서 인천 5·3민주항쟁을 회고하고 있다. 1986년 5월 3일 옛 인천시민회관 앞마당에서 민주헌법 쟁취,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 도중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지는 장면이 생생히 등장한다.

양 작가는 “6월 항쟁의 불씨였던 인천 5·3민주항쟁이 일어난 그날, 나는 들키지 않게 허리에 철사를 두르고 시민회관 광장 한가운데 있었다. 기다리던 호각소리가 나자 나는 재빨리 연단을 만드는 리어카로 달려가 허리춤의 철사를 풀어 내밀었다. 연단의 상판을 고정하는 데 쓰였다. 수만 장의 유인물이 하얗게 도로를 채웠고, 어디선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산문집 마지막 장에서는 박민규의 소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소개하면서 ‘삼미의 야구 정신을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는 부제를 달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탄생한 원년인 1982년에 창단한 인천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는 승률 0.125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비운의 야구단이다. 양 작가는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직장과 일터에 헌납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소설의 의미를 강조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