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자동차 모형 업체 ‘아말감’ 페라리 등 디지털 스캔해 설계… 실제 차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 부품 개발에만 4000시간 투자 숙련된 작업자가 수작업 생산… 8분의 1 축소품 1000만원 넘어
하나의 모형을 만드는 데에는 수천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아말감 컬렉션 제공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 서둘러 둘러보던 중, 비범한 기를 내뿜는 모형에 시선이 꽂혔다.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이캐스트 모형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덩치에 아주 정밀한 만듦새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전시용이 아니라 판매하는 것이었고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이 붙어있는 것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석구석 살펴보는 동안 실제 차를 연상케 하는 섬세함에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무나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때 그 모형이 남긴 깊은 인상은 아직도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조립식 자동차 모형을 만들거나 작은 크기의 모형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정밀하고 많은 부품을 조립해 실제 차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모형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모형은 자동차 모형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업체인 아말감 컬렉션(Amalgam Collection·이하 아말감) 제품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여러 자동차 관련 행사나 전시장에서 접할 수 있었던 대형 정밀 자동차 모형 가운데 아말감이 만든 제품이 꽤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1970년형 페라리 512S 경주차의 8분의 1 크기 모형의 값은 약 1만3000달러(약 1422만 원)다. 아말감 컬렉션 제공
아말감의 자동차 모형을 보면 하이퍼 리얼리즘 즉, 극사실주의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사진만 보면 실제 차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줄여 재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클래식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사로 된 바퀴살이다. 평범한 모형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투박해지기 쉬운 부분이지만, 아말감 제품은 그런 부분까지 금속 소재를 활용해 실제 차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보닛을 열면 드러나는 엔진룸을 빼곡하게 채운 각종 배선과 부품도 마찬가지다. 모형이라고는 하지만 구성하는 부품 수는 어마어마하다.
자동차 모형은 대부분 실제 차를 일정한 비율로 축소해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작은 부분들은 단순화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대한 실제 차의 요소들을 꼼꼼하게 재현해 반영할수록 정밀 모형으로서 가치가 높아진다. 물론 너무 작은 크기로 축소하면 세부 표현이 어려워지는 만큼, 정밀 모형으로 이름난 제품들은 덩치가 꽤 큰 것이 특징이다. 그래야 모형 특유의 분위기도 살리면서 정밀한 재현이 가능하다. 아말감의 주력 제품들이 길이가 60cm 정도인 8분의 1 축척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조립은 대부분 숙련된 작업자에 의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아말감 컬렉션 제공
탁월한 정교함은 아말감의 장기이자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은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확한 재현을 위해 아말감은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컴퓨터 설계 자료를 넘겨 받거나 실제 차를 디지털 스캔해 자료를 만드는 것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모형화 과정에서는 수백 장의 실제 차 사진도 참고해 디지털 자료가 미처 담을 수 없는 감성적 측면을 보완한다. 하나의 모형을 만드는 데에는 수천 개의 부품이 필요한데, 모든 부품은 주조, CNC 가공, 포토에칭 등 다양한 가공 방법을 활용해 원래 형태를 살린다. 모형 제작에 필요한 부품 개발에만 2500∼4000시간이 걸리고, 부품을 만들어 완성하기까지 250∼45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조립은 대부분 숙련된 작업자에 의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대량생산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수공예품에 가까운 셈이다.
평범한 모형이 아닌 만큼 실물을 시중에서 접하기는 어렵지만, 페라리 공식 온라인 쇼핑몰을 비롯해 인터넷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문은 열려있다. 페라리 공식 제품 중에는 1960년대 클래식 명차중 하나인 250 GT부터 비교적 최근 모델인 812 GTS에 이르는 스포츠카 라인업도 있고, F1 선수권에서 활약한 경주차들도 있다. 축소비율 18분의 1인 제품들의 값은 80만 원대, 8분의 1인 제품들의 값은 대부분 1000만 원이 넘는다. 이쯤 되면 축소 모형이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라는 선입견은 잊어버릴 만하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만, 실물을 보면 아마도 그런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렐 만큼 멋지고 매력 있는 차들을 가리켜 드림 카라고 하듯이 아말감의 모형들은 언젠가는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드림 모델 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