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정부 인턴 정원 배정 못해 3차 유행에 의료체계 마비 전 풀어야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올 1월 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무증상 전파에 대한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정 청장뿐 아니라 국내외 많은 전문가 생각이 비슷했다.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그래서다.
사정이 달라졌다. 여름이면 사라질 걸로 기대했던 코로나19는 삼복더위에도 기세등등했다. 우려했던 겨울철 유행은 현실이 됐다. 무증상 감염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게 분명해졌다. 지난달 29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괴물 같은 바이러스”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정 청장도 “정말 어려운 상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합치면 현재 방역당국은 ‘굉장히 불리한 여건에서 괴물 같은 상대’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땐 똘똘 뭉쳐 싸워도 승산을 점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적전분열(敵前分裂)에 가깝다.
겨울철 고비를 운 좋게 넘겨도 끝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인턴은 수도권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지방 대형병원의 피해가 뻔하다.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환자 치료도 차질이 우려된다. 지방의 거점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권 병원이 안심할 일도 아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인턴 대신 레지던트와 교수가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똑같은 의사니까 가능하다. 실제 지난 의료계 파업 때 그렇게 운영됐다. 그로 인해 중환자 수술과 외래진료가 미뤄져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틸 수 있지만, 1년을 그럴 순 없다.
병원마다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병원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 대학병원의 교육수련 담당자는 “그냥 암흑 속에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내년도 수련 일정 논의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턴이 전공과를 선택할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너도나도 인기 과목에 몰릴 가능성이 높고, 필수 분야 공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소아과, 산부인과 등에서 최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무의촌 지역을 지켰던 공중보건의사 확보도 어려워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장은 “1년, 2년 후 벌어질 혼란이 눈에 선하다”며 “그때 가서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청신호가 켜졌지만 누구도 선뜻 종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의사 국시 문제 해결을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장점이 확인된 건 부인할 수 없다. 의료계는 공공의료 정책 수립에 전향적 태도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도 의정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 오를 지렛대로 이 문제를 여겨선 곤란하다. 지금은 말한 대로 괴물 같은 바이러스만 생각하고 판단할 때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