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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쓰는 법]가족간의 장기기증, 당연한 일은 아니다

입력 | 2020-11-21 03:00:00

‘나는 생존기증자…’ 쓴 이경은 작가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간을 이식받지 못하면 목숨이 위험한 어머니에게 아들이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드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정말 ‘당연한’ 일인지 생각해 보자는 책이 있다. ‘나는 생존기증자의 아내입니다’(생각생각). 지은이 이경은 씨(33·사진)의 남편은 지난해 이맘때 간경변이 심한 어머니를 위해 자기 간의 70%를 떼어냈다. 그러나 수술 시간 직전까지 이 씨는 남편이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과연 남편은 안전할까.’ ‘수술 후 남편 삶의 질은 전과 같을까.’

“남편은 (기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하지’ 하는 분위기가 주변에 짙게 깔리면 기증 후보자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정말 수술하고 싶은지 물어봐주는 사람은 병원에도 없고, 가족 안에는 더 없죠.”

그의 남편을 수술한 병원에서는 “안전하다”는 말 말고는 시스템 차원에서 기증자의 안전과 사후 건강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다. 관심은 온통 수혜자에게 쏠려 기증자는 소외되는 듯했다. 정말 안전한지 근거를 보여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 씨에게 병원 측은 ‘용기와 희생’을 말했다. 책은 이렇게 썼다.

‘현재 장기이식 시스템은 완벽한 이타심을 발휘하거나 철저한 이기심을 드러내는 두 갈래 길만을 제안한다.’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씨는 “책을 쓰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반화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이 소용없어지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불안도, 그만의 유별남도 아니었다.

“기증자 커뮤니티나, 아주 드물지만 기증자 연구에 따르면 절반가량의 기증자가 불안감, 우울감, 알코올의존증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요. 면역력 저하, 피로감, 통증 등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고요.”

많은 기증자는 수술 이후 삶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보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 기증자의 진정한 자율적 선택이었는지는 병원과 언론이 그려내는 ‘미담’에 묻힌다.

“모든 기증자의 자발성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정신적 타격이 올 수 있고, 회복이 완전히 안 될 수도 있으며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수술 못 받겠다고 해도 괜찮으니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라’고 독려하는 시스템은 필요합니다.”

수술을 못 받겠다고 해도 비난받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 기증자의 자율성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병원과는 독립적인 기구가 이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자율적 선택을 시스템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생체 이식은 모두 2868건 이뤄졌어요. 매년 늘고 있어서 (장기 이식이) 남의 일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제 책을 읽고 ‘별문제 없다는데’ 하는 방관자적 태도가 아닌, 기증자의 자발적 결정을 보장하라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어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