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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쓰는 법]“자유주의 시대 모르면 자유를 고민할 수 없어”

입력 | 2020-10-10 03:00:00

‘문명론 개략’ 옮긴이 성희엽 박사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토착왜구’라는 억지소리가 채 가시지 않은 지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4∼1901)의 ‘문명론 개략’(소명출판)을 펴내는 것은 모험일 수 있다. 게다가 역자는 책의 해제(解題)에서 후쿠자와의 문명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역설한다. ‘이 사람이 쓰는 법’에서 옮긴이를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그의 해제는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번역자 성희엽 박사(57·사진)를 6일 만났다.

“일본 근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 꼽자면 후쿠자와가 1875년에 쓴 이 책입니다. 인터넷에는 후쿠자와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가 있는데, 이 책도 제대로 못 봤으면서 어떻게 그를 비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메이지유신을 이룬 1868년부터 약 10년간 일본은 혼란스러웠다. 혁명의 성공에 심취해 어떤 국가를 만들지 어렴풋했다. 후쿠자와는 개인의 자유와 공화(共和)의 가치를 바탕으로 권력의 전제(專制)를 견제하는 문명화에서 길을 찾았다.

“봉건사회와 근대사회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고민하던 후쿠자와는 자유를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공화와 결합해 권력의 전제를 견제해야 사회가 바르게 유지된다는 거였죠. 자유주의를 동양사회에서 처음 소화한 겁니다.”

서울대 화학과 82학번인 성 박사는 그 시대 운동권이 그랬듯 일본어를 공부해 한국에 없던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을 읽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찾은 일본판 마오쩌둥 선집의 ‘모순론’ ‘실천론’을 며칠간 밤새 번역해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0, 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유럽을 현장에서 본 뒤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정치권에 들어가 정부에서 일하던 40대 후반,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까 고민했죠.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할지 알려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국가를 이룬 일본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경대에서 일본 근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메이지유신의 역사를 다룬 ‘조용한 혁명’(2016년)을 냈다. 그리고 4년여 작업 끝에 이 책을 내놨다.

“한국 지도층은 대부분 자유주의 시대를 모르고, 자유라는 가치를 고민하지 않았어요. 산케이신문 칼럼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나 이른바 ‘코로나 독재’, (유력 정치인의) 성폭력 등을 보세요. 전체주의적 습성과 파시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죠.”

해제는 이렇게 맺는다. ‘…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와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국가 체제의 본질은 전제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는 물론이고 그 국가마저도 독립 자존할 수 없게 만듦을 생생하게 증거해 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