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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떼일라”…고삐 풀린 전셋값에 ‘깡통전세’ 주의보

입력 | 2020-10-07 07:30:00

지난달 전국 주택 전셋값 5년5개월만에 최대 상승
정부, 집주인 대신 값아주고 못 받은 전세금 2900억
집주인 대출 사전 확인·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서울 마포구에 사는 회사원 강희철(39)씨는 최근 전셋집을 재계약하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다. 강씨는 “그동안 여러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전세금 문제로 고생한 적 있었다”며 “100만원이 넘는 보증료가 부담되지만, 나중에 집값이나 전셋값이 떨어지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까봐 걱정돼 가입했다”고 말했다.

치솟는 전셋값이 집값을 추월하는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이른바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부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매맷값을 뛰어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전세수요 급등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깡통전세 위험이 짙어지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는 이른바 ‘갭투자’ 후폭풍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종합 전셋값은 전달 대비 0.53% 올랐다. 2015년 4월(0.59%)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6월 0.26%, 7월 0.32%, 8월 0.44%, 9월 0.53%까지 4개월 연속 상승세다.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수도권 주택 전셋값은 0.65% 올랐다. 2015년 6월(0.72%) 이후 5년3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경기도는 0.85% 올라 전달(0.71%)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또 인천은 0.52%로, 전달(0.17%) 대비 오름폭이 확대됐다. 서울에서는 서초(0.63%)·송파(0.59%)·강남(0.56%)·강동(0.54%) 등 강남4구를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뚜렷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새 임대차법에 따라 기존 주택에 눌러앉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세 물건이 부족해졌고, 집주인들은 4년 앞을 내다보고 미리 보증금을 올려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의 전세금을 갚아준 뒤 되돌려 받지 못한 금액이 지난 5년간 29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회수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7596억원 중 6494억원을 HUG가 대신 돌려줬다. 이 중 3560억원(55%)는 회수했지만, 2934억원(45%)은 아직까지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은 임대차 계약이 끝났음에도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HUG는 이후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청구해 회수한다.

HUG의 미회수 전세금은 보증사고 증가에 따라 해마다 급증했다. 2018년 792억원에서 2019년 3442억원으로 급증했다. HUG의 대위변제금은 ▲2018년 583억원 ▲2019년 2836억원 ▲ 올해 1~8월 3015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미회수액 규모도 2018년 301억원에서 2019넌 1182억원, 올해 8월 기준 1426억원으로 급증했다.

이같은 전세시장의 불안은 수급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신규 입주 물량 감소로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정부의 잇단 규제 대책 여파로 전세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임대차보호 3법과 0%대 초저금리 장기화,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영향 등으로 전세 매물은 갈수록 더욱 줄어들고 있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에 총 13만2000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8·4대책 발표 이후 청약을 기다리는 대기수요가 주택임대차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전셋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택시장에서는 수급불균형이 지속돼 전셋값 상승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셋값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변수인 신규 공급 물량도 갈수록 줄어든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9월 아파트 입주 예상 물량은 2만7025가구로, 이달보다 12% 감소한다. 수도권 공급은 전월의 36% 수준인 7132가구다. 이중 서울 입주 물량은 4269가구에 불과하다. 경기는 2522가구, 인천은 341가구로 전월 대비 각 78%, 89% 감소한다.

또 내년부터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면서 덩달아 전세 물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서울에서는 아파트 기준 총 2만3217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이는 올해 입주물량(4만2173가구)의 절반 수준인 55.1%에 불과하다. 2022년엔 1만3000여 가구로 대폭 줄어든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서울과 수도권지역에 13만2000가구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지만, 착공 뒤 입주까지 최소 3~5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전셋값 오름세는 불가피하다.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집을 팔아도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잇단 규제와 세금 부당 강화 코로나19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이 급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집주인의 대출을 확인하고, 전세금 반환보증보험도 고려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임대차 보호법과 3기 신도시 청약 등 전셋값 안정 요인보다 상승 요인이 더 많고, 내년 입주 물량도 많지 않아서 전세시장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세 매물이 줄고, 수요가 증가하는 등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일부 단지에서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함 랩장은 “앞으로 전셋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을 너무 높은 단지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전셋값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깡통전세로 인한 세입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계약 전 집주인의 대출 여부 등을 확인하고, 전세금 반환보증보험도 가입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