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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죽음’을 위로하는 건물[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입력 | 2020-09-30 03:00:00

〈35〉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하늘정원. 이곳은 지하 3층에서 지면까지 뚫린 땅속 마당으로 벽과 바닥이 모두 적벽돌 마감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조각상들은 천주교 순교자 44명을 버려진 철로의 침목으로 조각가 정현이 조각했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긴 추석 연휴 기간 어디를 다녀오면 좋을까. 경복궁의 경회루나 종묘의 정전이 나쁘지 않다. 가을 하늘이 맑아 돌기둥 위에 서 있는 정자 건축 경회루나 서울에서 가장 긴 전통 건물인 정전이 제격이다. 현대건축을 하나 추천해 보라고 한다면, 서소문역사공원을 추천하고 싶다.

이 공원에는 순교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하나 있다. 2019년 6월 개관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건축가 윤승현 이규상 우준상이 설계했다. 서울역 북쪽 철로변에 세워진 이 박물관은 특이하다. 공원만 보이고 건물이 눈에 안 보인다. 지하건축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 박물관을 보면 두 개의 적색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적색 정사각형 성큰 가든(땅속 마당)이다. 공원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다. 경사로의 양측 벽은 모두 벽돌 벽이다. 밑으로 내려가므로 벽돌 벽들은 높아지다가 종점에서 첫 번째 성큰 가든과 만난다. 주출입구 성큰 가든이다. 높은 벽돌 벽 성큰 가든은 하늘로 열려 있고, 벽은 코너에서 곡선으로 유연하게 돈다.

곡선 벽 아래에 있는 유리문으로 슬라이딩해서 들어가면 건물의 로비와 만난다. 질박한 격자형 콘크리트 보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천장이 마감되어 있는 보통 박물관과 차별된다. 천장재를 매달지 않고 구조를 있는 그대로 노출했다. 조명 메탈 박스들은 십자형으로 디자인하여 격자 보에 부착했다.

앞으로 전개될 공간이 구조미와 상징미하고 무관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도입부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면 지하 3층에서 이 박물관의 클라이맥스인 두 개의 큐브와 만난다. 하나의 큐브는 천장에 매달린 검은색 큐브(콘솔레이션 홀)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이 박물관의 두 번째 벽돌 성큰 가든(하늘 광장)이다.

검은색 큐브가 놀라운 것은 상당한 길이와 높이와 두께(1.5m)의 벽인데 지면으로부터 2m 떠 있다는 점이다. 기둥을 바닥에 두어 지지하지 않고 천장에 크고 두툼한 벽을 매달았다. 이 벽은 내외 마감이 다르다. 밖은 짙은 메탈 마감인데 안은 극장과 같은 스크린 월 마감이다. 이곳에 순교를 기념하고 영생을 상징하는 음악과 동영상이 흐른다. 천주교인이 아닐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벤치에 앉아 명상에 잠기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을 수 있는 것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메탈 벽 아래 가운데에는 일종의 제단이 있다. 순교자들이 자기 스스로를 산 제물로 바친 신유박해와 병인박해를 상징이라도 하듯 제단은 부활의 색인 백색을 하고 있고, 이곳에서 한 줄기 바닥 조명이 쭉 뻗어나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정원인 붉은 성큰 가든으로 나간다.

어두웠던 내부가 밝은 외부로 연결되며 눈이 부시지만 높은 벽도 벽돌, 넓은 바닥도 벽돌인 거대한 벽돌 방과 만난다. 천장이 없는 방이라 푸른 하늘이 천장을 대신한다. 지하 공간만이 줄 수 있는 유형의 공간인데 건축가는 이를 스케일과 단일 마감재로 극대화했다. 이곳에는 잡음은 뒤로 빠지고 정말 들어야 하는 한 소리만 침묵 속에서 나오는데, 이는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굿 뉴스’, 곧 복음이다.

이곳에는 믿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앞당긴 44명 순교자들의 조각이 군집을 이루며 서 있다. 바닥과 벽의 붉음은 가을 하늘의 푸름과 대비를 이루며 빛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짙은 음영을 떨구며 군집을 이루는 침목 조각상들을 위로한다. 그것은 순교는 거룩한 것이며 그 죽음은 죽었으되 산 것이라 말한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