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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과 격리의 시대, 문인들의 ‘마음방역법’

입력 | 2020-09-10 03:00:00

13인 코로나 관련 경험담 모은 책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출간
“함께 견디자는 말 건네고 싶었다”




“내키는 대로, 때에 따라 마스크는 반드시 써야만 하고, 가끔은 벗어도 상관없는. 코로나19는 이제 질병이라기보다 하나의 기분이 된 것 같다.”(소설가 김엄지)

“마스크가 평범해졌다. 엘리베이터 한쪽에 비치된 손소독제가 평범해졌다. 하루에 서너 차례 요란스럽게 울리는 재난문자도 평범해졌다. 평범.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이 평범해졌다.” (시인 김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문인 13인이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코로나19 시대의 특별한 경험담을 모은 책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B공장)를 출간했다. 올 6월경 출판사 기획위원인 소설가 이승우 권정현, 시인 이정하 씨가 아이디어를 냈고 젊은 작가 중심으로 원고를 모았다.

작가들은 코로나로 뒤흔들린 일상을 기민하게 관찰하거나 감각하고 저마다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개성 있는 글로 풀어낸다. 표제작을 쓴 소설가 손보미는 신부전에 걸린 반려묘(猫) 칸트를 돌보면서 ‘아픈 칸트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것처럼, 코로나로 뒤바뀐 일상도 삶의 일부가 됐음을 실감한다. 아픈 고양이에게 사랑을 쏟듯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부르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소설가 김유담의 ‘내 이웃과의 거리’는 최근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반영한 단편소설이다. 항공사 직원인 정윤은 육아휴직 중 맘카페에서 알게 된 동네 동생 혜미와 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코로나로 업황이 나빠지며 반강제로 휴직이 연장되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남편과는 수시로 다툰다. 그 와중에 외벌이인 데다 대출에 쪼들려 마스크 값도 감당 안 된다고 엄살이던 혜미네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몇 년 사이 두 배 넘게 오른 것을 알게 되면서 정윤의 분노와 허탈감은 정점을 찍는다.

공연, 여행, 요식업계에서 일하다 코로나로 줄줄이 실직하고 공허함에 빠진 20대 청춘의 고단한 하루(최미래 ‘지난 이야기’)와 죽음이 낯설지 않게 된 시대, 외할아버지의 쓸쓸한 장례식장 풍경(임성순 ‘장례’)이 그려지기도 한다. 유튜버인 소설가 정무늬는 한 달에 한 번 찾는 정신과가 전에 없이 붐비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예고 없이 일상이 무너진 시대 “정신과도 코로나 특수 업종이었구나”라고 느낀다.(‘노란딱지’)

이들의 다양한 일화와 사유는 감염과 격리의 시대에 불쑥 화가 나고, 무시로 답답해지는 우리 마음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가 김유담은 “모두가 힘들고 화가 가득한 시대, 글로 어떤 위안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나만 힘들고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말을 전하고 싶었다”며 “작가들이 보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누며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