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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관객을 만나야 살아난다[현장에서/김민]

입력 | 2020-09-09 03:00:00


권진규 유족이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한 서울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너는 아들이 넷이나 되어 든든하고 좋겠다. 너무 걱정 마라. 나는 얘네(작품)들이 내 자식이다. 네 자식들보다 오래 살 테니 걱정 마라.”

생전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자신을 애처롭게 보는 막내 여동생 권경숙 여사(93)에게 이렇게 말했다. 1973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도 그는 “작품과 사후 처리를 맡긴다”며 ‘누이동생 경숙 앞’으로 글을 남겼다. 짧은 유서 위에는 장례비가 놓여 있었다.

권 여사는 오빠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조카나 다름없는 유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평생 숙원이 됐다. ‘권진규 미술관’을 짓기 위해 독지가를 찾아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대일광업이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급’ 건축가에게 맡겨 미술관을 지어주겠다고 한 건 2015년이었다. 권 여사는 ‘미술관 주변에 해바라기 울타리나 꽃밭을 조성한다’는 조항도 넣어 미술관 설립 합의서를 작성했다. 해바라기는 오빠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다. 이때 넘긴 작품과 기록 700여 점이 대부업체 창고에 있음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한 뒤였다.

법정 공방 끝에 작품이 돌아와 서울시립미술관에 공간을 마련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가장 큰 손실은 그동안 작품이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2010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권진규 작가의 중요한 조각과 드로잉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권진규의 외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그간 겪은 우여곡절이 유족으로서 창피한 일”이라며 “신진 작가를 위한 ‘권진규상’을 제정하는 등 앞으로 작가를 기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술계에는 유족이 작품을 기증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증보다 그 이후 작품 관리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미술관 건립이 공수표가 되거나, 미술관을 짓고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음도 인다. 수년 전에는 한 재불(在佛) 작가 미술관이 관장도, 큐레이터도 없이 개관해 논란이 됐다. 기증보다 중요한 건 이후 보존과 지속적인 연구 활동이다.

작가 미술관 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미술관이 손을 놓거나 때로는 유족이 불필요하게 관여해 관객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작품은 미술관도, 유족의 것도 아닌 공공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권진규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시대적 맥락에 맞는 전시가 열리길 기대한다. 작품은 관객의 눈을 만나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때 비로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