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유족이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한 서울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생전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자신을 애처롭게 보는 막내 여동생 권경숙 여사(93)에게 이렇게 말했다. 1973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도 그는 “작품과 사후 처리를 맡긴다”며 ‘누이동생 경숙 앞’으로 글을 남겼다. 짧은 유서 위에는 장례비가 놓여 있었다.
권 여사는 오빠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조카나 다름없는 유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평생 숙원이 됐다. ‘권진규 미술관’을 짓기 위해 독지가를 찾아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법정 공방 끝에 작품이 돌아와 서울시립미술관에 공간을 마련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가장 큰 손실은 그동안 작품이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2010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권진규 작가의 중요한 조각과 드로잉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권진규의 외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그간 겪은 우여곡절이 유족으로서 창피한 일”이라며 “신진 작가를 위한 ‘권진규상’을 제정하는 등 앞으로 작가를 기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술계에는 유족이 작품을 기증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증보다 그 이후 작품 관리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미술관 건립이 공수표가 되거나, 미술관을 짓고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음도 인다. 수년 전에는 한 재불(在佛) 작가 미술관이 관장도, 큐레이터도 없이 개관해 논란이 됐다. 기증보다 중요한 건 이후 보존과 지속적인 연구 활동이다.
작가 미술관 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미술관이 손을 놓거나 때로는 유족이 불필요하게 관여해 관객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작품은 미술관도, 유족의 것도 아닌 공공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