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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경찰 될래요” 끝내 울어버린 윤성이[광화문에서/신광영]

입력 | 2020-07-31 03:00:00


신광영 사회부 차장

순직한 아빠 대신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일곱 살 윤성이는 내내 의연했다. 빳빳한 제복 차림의 어른들 틈에서 아빠 이름이 적힌 상패를 가슴 한가득 안고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기념촬영도 했다. 시상식 팸플릿에 윤성이 아빠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다가 차량에 치여 순직한 이상무 경위였다. 윤성이는 그의 3, 5, 7세 아들 중 첫째다. 아이와 얘기를 나누게 된 건 23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이 끝날 무렵이었다.

“팸플릿 보니까 윤성이 장래 희망이 경찰관이네. 아빠처럼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어?”

시상식에서 아빠 이름이 호명될 때도 의젓한 눈망울을 반짝이던, 경찰관인 엄마가 흐느낄 때마다 담담히 손 잡아주던 큰아들 윤성이는 그제야 어린이로 되돌아왔다. 윤성이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의 눈가에 손수건을 갖다 댔다.

윤성이의 바람처럼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길을 걷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 아버지와 같은 제복을 입고, 아버지가 쓰던 장비를 들고, 아버지가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현장에 출동하는 사람들이다. 아버지와 생전에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지만 같은 제복을 입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교감하고 동시에 그의 부재를 실감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김도균 경사(38)는 윤성이의 30년 뒤 모습일지 모른다. 김 경사의 아버지는 2006년 도로에 자갈을 흘리는 덤프트럭을 단속하던 중 다른 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윤성이와 동갑인 김 경사의 아들 역시 “아빠처럼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김 경사는 윤성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훗날 제복을 입게 된다면 아버지의 제복도 함께 입는 거예요. 그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순직한 아버지의 직업은 자녀에겐 애증의 대상일 수 있다. 2018년 경북 영양경찰서 김선현 경감이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순직했을 때 그의 딸은 경찰 필기시험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시험을 준비해 왔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순직은 오랜 꿈을 뒤흔들 만큼 충격이었다. 딸 김성은 순경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그해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제가 경찰이 되길 원하실 거 같아 힘을 냈다”고 했다.

경남 창원소방본부 김동수 소방경의 아버지는 1996년 지리산에 조난된 등산객을 구하고 돌아오다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구조대원이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김 소방경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헬기 옆에서 제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과 빼곡히 적은 근무일지를 보고 소방관의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었을 땐 진로를 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하는데 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고 겁도 많은 평범한 사람이라….”

그는 2015년 결국 소방관이 돼 화재진압대원으로 일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랑 목욕탕을 못 가본 게 아쉬웠는데 아버지처럼 방화복을 입고 호스를 들고 있으면 그때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 같아요. 불구덩이를 만나도 아버지가 옆에 계신 것 같아 덜 무섭더라고요.”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것은 제복 공무원의 가족으로서 불안과 빈자리를 감당했던 데 이어 아버지가 짊어졌던 위험과 책임까지 승계하겠다는 결심이다.

제복에는 책임감이 묻어 있다고 한다. 제복을 입는 순간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몸이 먼저 그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제복의 DNA’가 그런 것일까. 똘똘한 한 채를 대물림하거나 각종 ‘아빠 찬스’가 적지 않은 요즘, 아버지의 못다 이룬 숙명을 이어받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