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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만평으로 출판계 모순 꼬집어

입력 | 2020-07-14 03:00:00

신간 만화 ‘카프카와 함께 빵을’




신문마다 경쟁적으로 만화를 싣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만화들은 촌철살인의 상쾌한 해학을 아침마다 독자에게 전했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어 지루해진 선동적 만평만 인쇄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카프카와 함께 빵을’(에프·사진)은 오래전 그 재기 넘치던 만화들의 기억을 희미하게 되살려주는 만화책이다. 출판계 현실의 모순을 직시한 유머가 무기력한 패배감의 기색 없이 깔끔한 웃음을 선사한다.

저자 톰 골드(44)는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출신의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일간지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주간지 뉴요커에 만평을 발표해왔다. 인쇄매체에 게재된 작품을 모은 이 책으로 2018년 미국 만화상인 아이스너 어워드(유머 부문)를 수상했다.

대부분 출판 또는 미디어 업계의 ‘그리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간결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TV드라마나 영화 제작을 위한 재료로서의 상업적 효용을 기준으로 모든 글이 무자비하게 재단당하는 작금의 현상에 대한 투덜거림이 밉지 않게 이어진다.

칼과 도끼, 불 뿜는 용이 난무하는 정체불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자, 여기서 일부는 3부 마지막 권까지 살아남겠지만 TV판으로 각색될 때 ‘너무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제거될 거예요”라고 고지하거나, ‘원작을 능가한다’는 호평을 받은 영화의 원작 소설책이 슬픔에 빠진 모습을 의인화해 묘사하는 식이다.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문화산업 전반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짚어낸 만화 ‘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제공

성난 얼굴로 찾아온 원작 소설 작가에게 판권 구매자는 태평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잘못된 배역 선정, 어설픈 더빙, 무자비하게 잘려나간 줄거리, 어색한 배경 묘사, 잘못 설정된 분위기, 고증 디테일 오류, 불필요한 누드 장면, 뜬금없는 해피엔드’를 빼면, 선생님 소설의 각색본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지요?”

인쇄 과정에서의 실수인지 그림 윤곽선이 번져 찍힌 페이지가 적잖이 눈에 띈다. 2쇄가 나온다면 보정돼야 할 실수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