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초기 소련군이 38선 일대 전방사단을 포함해 한국군을 전방위 감청했다는 사실이 담긴 문서가 공개됐다. 북한의 남침에 소련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당시 소련군의 한국군 감청이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북한군 노획문서 자료집을 23일 발간했다. 2권 분량의 자료집은 1942년 창설된 미군 특수부대 연합군번역통역국(ATIS)이 6·25전쟁 당시 입수한 북한군 노획문서를 완역해 분석한 것이다.
●“1948년 철수했다”던 소련, 실제론 北 남침 개입
공개된 문서 중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북한군 소련고문관이었던 무르친 중위(Lt. Murzin)가 작성한 ‘무르친 감청보고서’다. 100쪽 분량 보고서에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9일까지 보름간 한국군 전방사단 무전 감청 내용이 정리돼있다. 옹진반도, 개성, 의정부, 동두천 등 당시 38선 지역에 배치된 국군 1, 3, 6사단 등이 국방부에 보고한 개전 상황, 탄약 요청, 증원 요청 등을 감청해 정리한 것이다. 무르친은 육군본부, 법무부 등 각 행정부서와 해군부대 등의 무선보고도 감청해 보고했다.
군사편찬위원회 측은 “무르친 감청보고서는 소련군이 6·25전쟁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전쟁 초기 북한군을 지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소련은 북한의 남침을 지휘한 것 아니냐는 당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1948년 12월 31일부로 북한군 소련고문관이 모두 철수했다”며 6·25전쟁 개입설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무르친 감청보고서는 실제로 소련고문관이 전쟁 발발 이후에도 북한에서 활동했으며 실제 군사 작전에 필요한 자료 수집에 직접 나섰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해방군’을 자처한 소련이 실제로는 북한 지역을 지배하려 했다는 정황을 담은 증거도 나왔다. 북한 지역 청진항을 30년 동안 소련 해운회사에 양도하라는 북한 인민위원회의 지시 문건이 그것이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1948년 9월 9일 이전인 1947년 7월 16일에 해당 문건이 작성됐음을 감안했을 때 정권 수립 이전부터 소련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항구 소유권과 같은 이권을 행사하려 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北 남침’ 뒷받침하는 전투명령서도 추가 공개
이밖에도 북한의 남침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추가로 발굴됐다.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에는 북한군 제783부대의 전투명령서와 북한군 제2사단의 전투명령서 등이 포함됐다. 제783부대 전투명령서는 6·25전쟁 발발 이틀 전인 1950년 6월 23일에 발행됐으며 제2사단 전투명령서는 1950년 6월 21일까지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주둔하고 있던 춘천 방면으로의 남침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담고 있다. 군사편찬위 측은 “기존에 공개됐던 북한군 제4사단 전투명령서에 이어 2번째로 공개된 북한군 전투명령서로, 6·25전쟁이 북한의 사전 계획에 의한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해군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도 함께 공개됐다. 미국이 확보한 북한군 노획문서 중에는 6·25전쟁을 앞두고 1950년 1월부터 3월까지 실전훈련을 전개하고 수정을 거듭한 북한해군 제1전단의 작전임무 보고서를 포함해 1950년 6월 10일 영흥만 일대에서 이루어진 북한군 제2정대의 향해 훈련 계획서와 북한해군 제599부대의 전투보고서 및 전투일지 등이 포함됐다. 또 6·25전쟁 이전인 1950년 6월 16일부터 7월 7일까지 부대의 이동로 및 피해상황을 적은 ‘리홍식의 일기’와 북한군 게릴라 부대원 이건창이 1950년 7월 4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작성한 일기 등 북한군의 남침 이동 경로와 당시 상황 등을 보여주는 사료도 이번에 새로 공개됐다.
강성휘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