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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그림’ 같은 한라산 방목… 지금은 추억속으로

입력 | 2020-06-22 03:00:00

인문학으로 본 한라산〈3〉




한라산 식물생태계를 교란하는 제주조릿대를 제거하는 연구를 위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라산 만세동산 일대에서 말 방목이 이뤄졌다. 제주조릿대를 뜯고 있는 말 뒤로 한라산 정상 백록담이 보인다. 제주도 제공

21일 오전 한라산 어리목 탐방로에서 300m가량 떨어진 해발 1630m 만세동산(또는 망동산) 꼭대기 용암바위에 서 보니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은 물론이고 멀리 제주 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과거 목자(牧子)들이 소와 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망을 본 곳’이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용암바위 주변으로 제주조릿대가 덮은 지역과는 달리 철조망이 둘러쳐진 1만 m²의 면적에는 골풀, 김의털 등의 풀이 덮였고 일부는 흙이 드러났다.

제주도의 의뢰를 받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말 방목이 제주조릿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 조사한 결과다. 불과 2, 3년 만에 말들이 제주조릿대를 모두 먹어치웠고 심지어 뿌리까지 없앴다. 이번 연구는 방목과 제주조릿대의 관계를 규명한 성과와 함께 과거 고지대에서 이뤄졌던 목축문화인 ‘한라산 방목’을 재현한 상징성도 있다. 해발 1400∼1800m 고지대에서 소와 말을 방목한 사례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제주지역 특유의 목축문화로 평가받고 있다.

● 독특한 목축문화인 한라산 방목
한라산 고지대 방목의 장점은 싱싱한 풀을 먹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름철에도 18도 안팎의 선선한 날씨 덕분에 진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목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인 ‘테우리’들은 여름철마다 소와 말에 달라붙는 진드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공동 목장에서 방목을 하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한라산 방목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제주지역 목축문화 전문가인 강만익 박사(문학·한림고교 교사)는 “제주의 목축민들은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 초지대를 마을 위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상산(上山)’이라 불렀다”며 “목자들이 자율적으로 질서를 지키면서 아고산대에서 행한 특유의 목축문화인 ‘상산 방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 방목이 가능하려면 김의털, 청사초, 제주조릿대 등의 먹이 외에도 물이 필수였다. 해발 1400∼1700m에 있는 사제비샘, 노루샘, 백록샘, 방아샘 등은 소와 말에게 물을 공급해줬다. 볼래오름, 만세동산, 삼형제오름 등의 습지와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 일대를 비롯해 윗세오름, 쳇망오름, 이스렁오름, 큰드레 등의 오름(화산체) 주변 초지가 주요 방목지였다.

일부 소는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분화구 내부까지 들어가 풀을 뜯었다. 물이 있고 비바람을 피할 수도 있어 소들이 본능적으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밭에서 일하는 소를 제외하고는 산으로 올려 보냈다. 말은 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해 늦가을까지 방목이 이뤄졌다. ‘궤’로 불리는 바위그늘이나 길이가 짧은 바위굴은 테우리들이 잠을 자거나 비바람을 피하는 쉼터이자 임시 숙소였다. 장구목 윗상궤, 선작지왓 탑궤, 백록담 동릉의 등터진궤, 돈내코탐방로 평궤 등이 대표적이다.

소와 말을 고지대로 올려 보낸 지역은 제주시 노형동, 해안동, 애월읍 광령리 등과 서귀포시 하원동, 회수동, 호근동, 상효동 등으로 한라산 남쪽과 북쪽 지역이 대부분이다. 타원형인 제주 섬의 지리적 특성상 동쪽과 서쪽에서는 초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했기 때문에 고산 지역에서 방목할 필요가 없었다. 한라산의 소와 말들은 서로 섞이는 바람에 찾지 못한 사례도 있었지만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어 방목이 가능했다. 하지만 일부는 밀림 속으로 들어간 뒤 ‘야우(野牛)’로 변하기도 했으며 최근 발견되는 배설물 흔적 등으로 볼 때 야우의 후손인 야생 소들이 한라산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국립공원화 과정에서 우마 방목은 사라져
수천 마리에 이르렀던 고지대 방목은 1970년 한라산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국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산과 사람의 분리가 나타나고,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는 과정을 밟게 됐다. 진종헌 공주대 교수(지리학)는 “산의 국립공원화 과정과 지속적인 휴양지 및 관광지화 등을 통해 경제적 생존을 위해 얽힌 사람과 산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당면한 목적이었다”며 “근대화 기치 속에서 산은 사적인 삶과 활동을 배제하고 시민을 위한 휴양의 공간으로서 보호되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한라산 방목은 금방 중단되지 않았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측은 방목을 하는 오랜 관행을 묵인해 주기도 했는데 방목이 한라산을 훼손하고 등산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1980년대 들어 단속을 강화했다. 방목한 소와 말을 임시 목장에 가둬서 관리 비용을 부과하는 등 제재가 이어지자 1980년대 말 고지대 방목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라산 방목의 마지막 세대인 원수윤 씨(62·서귀포시 하원동)는 “1990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다른 마을 주민의 요청으로 암소와 교배를 위해 수소를 올려 보낸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국립공원으로 소를 보내지 않고 마을 공동 목장에서 사육했다”며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에 한라산 방목을 허용한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말 방목을 이용한 제주조릿대 관리 방안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인데 제주조릿대 제거, 목축문화 재현을 위해 방목을 실시할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김대신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생물자원연구과장은 “방목이 한라산을 잠식하고 있는 제주조릿대를 제어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은 맞지만 악영향의 변수도 있다”며 “국립공원에서의 방목 여부는 공론화 과정 등을 거치면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