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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인간의 야만은 ‘약육강식’…코로나 시대 더 심화될 것”

입력 | 2020-06-16 16:06:00

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신화적 상상력 발취…초·단 두 나라 간 전쟁 배경
집필중 건강 악화..."허겁지겁 마무리 괴로웠다"




 “인간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 이 적대감의 뿌리에 대한 무서움, 즉 이 세상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야만성을 폭로하고, 그런 모습들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현의 노래’의 저자 김훈 작가가 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로 돌아왔다. 김훈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이러한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그 야만성 위에 문명이 발달하는 아이러니함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16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북카페에서 ‘김훈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현장에 등장한 김훈 작가는 수척해보였다. 출판사 측은 그가 작업 말미에 병고를 치렀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훈 작가는 “책을 써서 세상에 내보냈으면 그걸로 끝을 내야하는데,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됐다”며 쑥스러워했다.

김훈 작가는 “폭력과 약육강식의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다. 인간 문명의 기초에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야망과 폭력성이 깔려있다고 본다. 그런 초석 위에 인간의 역사가 쓰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고대사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거의 100년을 싸웠다. 거의 매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삼국사기를 보면 ‘피가 강물처럼 흘러 방패가 떠내려갔다’는 표현이 있다. 과장이었겠지만 그 시대 역사적 풍경을 인간 감성에서 바라보고 써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고대국가들이 다 불교를, 부처의 자비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했다. 지금처럼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가 이데올로기임에도) 방패가 피에 떠내려가게 싸웠다. 그 적대심의 뿌리가 뭐였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그 폭력과 야만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역사가들도 설명을 못했다. 싸웠다는 건 설명이 되는데 그 뿌리가 뭔지는 알 수 없다. 저는 그런 것들을 써보려고 했다”고 전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유목 생활을 표방하는 초(草)라는 나라와 농경 생활을 표방하는 단(旦)의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야만과 문명이 충돌하며 그 속에서 생명들이 태어나고 또 죽어간다.

소설의 중심에는 두 마리 말이 등장한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는 신월마 혈통의 ‘토하’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 혈통의 ‘야백’이다.

두 말은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하고 전후의 폐허에서 조우한다.

김훈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10여년 전 미국에 갔을 때 인디언 마을을 여행하다가 야생말들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여행 중 저녁 무렵 어둠 속에서 수백마리 말의 무리를 봤는데 그 말들이 각각 혼자서 아주 조용하게 어둠을 맞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훈 작가는 ‘언젠가 말에 대한 작품을 쓰게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 돌아온 뒤 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말의 역사나 습성, 인간에게 사육되는 과정, 인간의 문명과 야망을 감당하는 모습들까지.

김훈 작가는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고도 했다.

작품의 배경은 상상의 공간이다. 철저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졌다. 김훈 작가 역시 “이 소설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은 역사상 배경을 따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종전 작업과의 차이점을 묻자 “저는 제가 쓰는 언어가 정보전달이나 서사의 전개 뿐 아니라 화가가 물감을 쓰듯이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지금까지 써본 적 없었던 언어세계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느껴졌을 때 기뻤고 그렇지 않았을 때 고통이 컸다”고 답했다.

김훈 작가는 “(집필 중) 건강이 악화돼 허겁지겁 마무리 지었는데, 그런 점이 괴로웠다”며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10여년 전 봤던 말들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정말 행복했다. 그랬는데 펜을 들고 책상에 앉으면 그런 즐거움이 다 없어지고 고통이 이어졌다”고도 했다.

인간이 말의 등에 처음 올라탈 무렵의 인간의 욕망을 그린 김훈 작가에게 현대 사회에 가장 두드러진 인간의 야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그러자 김훈 작가는 “약육강식”이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김훈 작가는 “분명하다. ‘약육강식’을 제도화하고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라며 “이것은 정말 인간이 청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류 사회의 모든 혁명은 인간이 약육강식을 견딜 수 없기에 벌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혁명들은 약육강식의 운명을 돌파하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약육강식은 계속 시스템화 되어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자가 계속 살기 위해선 나의 고기를 강자의 먹이로 줘야한다면, 그건 뭔가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아닌가”라며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인간의 사유는 그다지 깊지 않다. 계속 일상화되고 제도화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현대 사회에 나타난 부익부 빈익빈, 불평등 심화 문제에 대해 묻자 김훈 작가는 “가진 자들이, 기득권이 양보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문제들은 인간의 선에 호소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인간의 자비심을 충족시키고 일부 만족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약육강식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득권이 나누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최근 불거진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선 “코로나19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너무 많은 예언가들이 예언을 한다”며 “결국 약육강식이 심화하는 방식으로 굳어져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