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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가야 하는 길[현장에서/강은지]

입력 | 2020-05-27 03:00:00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골목길. 음료가 담긴 일회용 컵들이 다른 쓰레기와 함께 뒤섞여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지난해 9월 ‘줍깅’을 경험했다. 줍깅이란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 당시 환경단체가 주관한 ‘플라스틱컵 줍깅’ 행사가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열렸다. 참가자 50여 명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일회용 컵 1253개를 수거했다. 공원 벤치 아래, 담벼락 위, 전봇대 주변…. 길에 나뒹구는 일회용 컵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랐다. 약 8개월 만인 지난주 같은 장소를 둘러봤다.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일회용 컵의 재질인 종이와 플라스틱은 좋은 재활용 자원이다. 재질별로 분리수거하면 다양한 용도로 다시 태어난다. 현실은 안타깝다.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는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일회용 컵은 급증하는데, 재활용되는 컵은 20개에 한 개꼴이다. 마구잡이로 버려진 일회용 컵은 무용지물이다. 그냥 쓰레기가 된다.

20일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도입을 위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냈다. 보증금제가 이 문제를 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회용 컵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컵을 쓸 때 보증금을 내고, 컵을 반환하면 돌려받는 것이 핵심이다. 2년의 준비 기간이 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 각양각색이던 소주·맥주병의 ‘표준 용기’를 지정하고 반환 방식을 도입하는 데도 진통이 컸다. 소비자들은 빈 병 회수를 거부하는 소매점에서 불쾌감을 느꼈고, 가게들은 빈 병을 보관할 공간을 따로 만드느라 불편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이 적용되면 소비자는 당장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고 느낄 것이다. 아무 데나 휙 버리던 컵을 반환할 곳을 찾기도 불편할 것이다. 쓰고 난 컵을 받아야 할 업체들도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일회용 컵을 관리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답은 ‘그렇다’다. 일회용품 사용을 까다롭게 하는 건 한국뿐이 아니다. 이미 미국, 독일, 호주 등 16개국은 페트병, 캔, 유리, 종이팩 등 일회용기에 보증금을 물리고 있다. 아일랜드는 2021년부터 일회용 컵에 아예 ‘라테세’라는 이름으로 개당 0.25유로(약 340원)의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더 이상 버릴 곳이 없어서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일회용품은 바다로, 산으로 흘러가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회용품 사용에 다시 관대해지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걸 보면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일회용품 사용은 감염을 예방하는 차원에선 긴급하게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다회용기를 위생적으로 사용하면서 일회용품을 서서히 퇴출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