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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시대이자 격리의 시대[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9〉

입력 | 2020-04-28 03:00:00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아이는 학교에서의 일과를 마치면 친구들과 해 떨어질 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집 밖을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수업도 온라인으로 듣고 숙제도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친구들도 온라인으로 만나니까 그럴 만하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일상의 변화를 낯설어하더니 어느새 제법 익숙해졌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도 딱히 아쉬워하는 것 같지 않다. 아이에게는 친구들과 만나 놀던 장소가 학교 운동장에서 게임이나 유튜브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아이는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도동이(가명)의 채널이 왜 자기 채널보다 인기(구독자)가 많을까,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격리돼 있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위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셈이다.

아이들의 일상만 바뀐 게 아니다. 학부모와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의 일상도 덩달아 바뀔 수밖에 없다. 학교에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도 두말할 것 없다. 게다가 온라인 개학으로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각 학교에 식재료를 공급하던 농민들은 생계까지 곤란해졌다. 다행히 정부는 그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초중고교 학생이 있는 가정에 무상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면 이 일상의 변화가 대체 어디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도무지 헤아리기 힘들다. 우리가 서로 이만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 거리를 두고 나서야 새삼 깨닫는다.

반면 얼마 전 한 친구는 잠실에서 북한산 봉우리가 보인다며 놀랍다는 듯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증샷을 올렸다. 인도 접경에서도 수십 년 만에 히말라야 봉우리가 보인다더니 가짜 뉴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매년 이맘때마다 달고 살던 안약과 알레르기약을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도 예전보다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코로나19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문명을 시험하는데, 그동안 인간의 각종 경제활동으로 병들었던 자연은 이때를 놓칠세라 회복기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지금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교훈을 얻자는 얘기다.

물론 이 진통을 겪고도 우리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로 또 다른 위기가 닥치면 공공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종차별과 지역차별을 고스란히 반복할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이 더 치명적인 빈곤계층은 계속 치명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문득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떤 얘기를 했을까 싶다. 재난이면서 동시에 그 어떤 혁명도 이루지 못한 변화를 도모해야 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디킨스라면 어떻게 얘기했을까. 그 얘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아마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초연결 시대이자 격리의 시대였다.’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