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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쓰는 법]응급실에서 마주한 인간군상의 맨얼굴

입력 | 2020-04-18 03:00:00

‘응급의학과…’ 쓴 곽경훈 씨




책의 향기는 개성 강한 저자를 인터뷰한 ‘이 사람이 쓰는 법’, 놓치고 지나친 책의 리뷰 ‘이 사람이 읽는 법’,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을 소개하는 ‘이 사람이 만드는 법’을 번갈아 게재합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신선하게 조명한 책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훅 하고 짧은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첫인상은 진짜 웃음 많이 짓는 사람 특유의 눈가 주름에 슬슬 바뀐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원더박스)의 저자 곽경훈 씨(42·사진)를 15일 만났다. 울산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인 곽 씨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보낸 레지던트 4년간의 얘기를 담았다. 응급 처치 후 추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각 과 레지던트들이 “우리 과 담당 아니다”라며 받기를 꺼리고, 전문분야 경력이 일천한 교수들은 호언장담하다 환자를 위기에 빠뜨린다.

―당시 교수들이 좋아하지 않겠다.

“심히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가 97학번인데 선배들은 ‘이런 얘기까지 적으면 문제 아이가’라는 반응이고, 레지던트들은 낄낄대며 ‘맞잖아’ 한단다.”

‘동물의 왕국’ 짐승 무리 관찰하듯 인간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시니컬한’ 학문, 인류학에 매료됐었다는 그의 말대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둘러싼 군상들의 이야기가 민족지(民族誌)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응급 치료 후 각 과에서 입원 환자 받기를 미룬다.

“사람이 신체 손상을 10점 입으면 죽는다고 볼 때 5점짜리 손상 2개나 10점짜리 1개면 산다. 임상과가 명확하니까 치료를 잘 받는다. 하지만 1점짜리 손상 10개면 목숨이 흔들린다. 걸쳐 있는 임상과 모두 ‘우리 환자 아니다’라고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실력인가.

“전혀. 평균이나 평균 약간 아래 수준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복싱도 하고 사진 찍기도 좋아하고 수업 빠지고 영화 보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고는 유연하다. 간호사가 ‘이런 상태 아닐까요’라고 살짝 하는 말도 진단에 참고한다. 그럼 도움이 된다.”

―교수들을 들이받기도 한다.

“큰 조직에 있으면 부조리한 일이 생기는데 적당히 반항해도 괜찮다. 레지던트 때 좀 불합리한 거 있으면 교수님한테 대들어도 죽지 않는다. ‘하얀 거탑’ 속 꼬붕 짓 하는 의사들처럼 비굴하게 살 거면 나와서 돈 많이 벌고 살면 된다. DNA 규명한 왓슨처럼 똑똑한 것도 아니고, 또 그만큼 똑똑하면 윗사람 엿 먹여도 교수 된다. 쫄지 말고 살자는 얘기다.”

―응급실의 영웅처럼 비치는 대목이 있다.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도, 정의로운 슈퍼맨도 아니다. 돈을 많이 받으니 그 값을 하는 사람이다. 이 일을 존경하는 만큼 명예를 지키려고 한다. 환자가 ‘갑질’ 하면 까칠하게 꺼지라고 한다. 나쁜 평판이 가끔씩 있어야 명예를 지킬 수 있다.”

―글이 드라마 보듯 술술 읽힌다.

“작가를 꿈꿨기에 글쓰기는 진정한 자아실현이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 의사 잡지에 수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세미프로는 돼야 한다. 글 쓰는 의사들이 많은데 다들 착하고 감성적으로 쓴다. 후발주자로서 그런 캐릭터로는 성공 못 한다. 남궁인 씨는 잘생기고 좋은 학교 나왔지만 나는 못생기고 지잡대 출신이다. 그렇게 멋지고 온화한 역할 하면 망한다. 하하.”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