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돈의 신’을 모신 뉴욕의 신전[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입력 | 2020-03-25 03:00:00

〈26〉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왼쪽 그림은 17세기 뉴암스테르담. 북쪽과 서쪽에 방어용 성벽을 쌓았고, 남쪽에 포대를 두었다. 북쪽 성벽 자리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이다. 오른쪽 그림에서 삼각형 지붕이 있는 건물이 뉴욕증권거래소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우리는 감염 확진자가 완만한 증가세였고, 미국과 유럽은 가파른 증가세였다. 지난주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했고 외국인은 패대기쳤다. 다우존스의 등락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월스트리트. 한국어로는 ‘담길’. 어쩌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금융시장의 대명사가 담길이 됐을까? 17세기에 뉴욕은 ‘뉴암스테르담’이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벤치마킹하여 모스크바 대신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을 만큼 세계적인 운하와 해양 무역 도시였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강자였고, 영국인보다 앞서 인디언들의 ‘마나하타’(맨해튼 어원)를 식민지화했다. 훗날 영국인 요크(York) 공작은 이 땅을 힘으로 빼앗고, 이곳을 자기 이름을 따라 ‘뉴욕’이라 개명했다.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맨해튼섬 남단에 암스테르담처럼 강에 직각이 되게 운하를 내륙으로 팠고, 북쪽과 서쪽으로 성벽을 쌓았고, 남쪽 끝에는 포대를 두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인디언들이 썼던 넓은(Broad) 도로인 브로드웨이는 그대로 두었다. 이는 북쪽 성벽을 관통하는 유일한 대로였다. 오늘날 월스트리트는 네덜란드인들이 세운 북쪽 성벽(Wall)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배터리 파크는 남쪽 포대(Battery)에서 유래한다. 브로드웨이와 월스트리트 교차점 안쪽에 세계 금융 파워하우스, 뉴욕증권거래소(1903년)가 있다. 뉴욕 주식거래 규모는 1896년(다우존스 지수 사용 원년)부터 1901년까지 6배 증가했는데, 이는 18세기 파리, 19세기 런던에 이어 뉴욕이 20세기 세계 금융 수도가 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전 건물로는 성장하는 거래 규모를 수용하기가 불가했기에 새로운 증권거래소가 공모전에 나왔고, 건축가 조지 포스트가 당선됐다.

포스트는 노력파 건축가였다. 뉴욕대를 졸업한 그는 당시 파리 유학파 건축가 1호였던 리처드 모리스 헌트를 사사했다. 포스트는 헌트로부터 원조 고전주의 양식을 습득했다. 포스트는 전통 건축양식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던 엘리베이터 기술과 유리벽 기술에도 열려 있었다.

포스트는 1860년에 독립해서 개업했다. 10년 만에 그는 뉴욕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가 됐다. 특히, 1889년에 그는 많은 뉴욕 건축가들의 선망이었던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의 뉴욕 주택 설계권을 거머쥐면서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증권거래소 설계 공모전 당시 심사위원들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도전적인 대지와 새로운 건물 프로그램의 해결방식이었다. 대지는 북서쪽으로 경사가 심했고 모양은 비정형이었다. 이곳에 거대 트레이딩룸을 넣어야 했다. 포스트는 경사를 숨길 수 있는 기단부를 만들었고, 그 위에 로마신전 같은 외관을 얹었다. 16m 기둥 6개 뒤에 거대한 채광용 유리벽(약 가로 15m, 세로 30m)을 설치했다. 그 뒤에 트레이딩룸(가로 43m, 세로 33m, 높이 22m)을 두었다.

열주와 유리벽 경계에서 우리는 포스트의 건축철학을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것과 옛것의 만남이다. 대규모 트레이딩이 새 시대의 요구라면, 이를 로마식 외투로 입히는 것이 포스트의 형식이다. 물론 이 점이 훗날 진보적 미국 건축가들에게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해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은 포스트의 방식이 대세였다. 포스트는 1913년에 사망했다. 시대정신의 풍향이 바뀌어 포스트가 지은 수많은 월스트리트 마천루들은 20세기에 대부분 철거됐다. 그래서 증권거래소는 포스트의 소중한 유작이다. 오늘날까지 그의 유작은 월스트리트의 힘과 부를 상징하고, 또 그 안의 다우존스의 등락은 지난주처럼 세계 주식 투자자들의 마음을 천국과 지옥을 들락날락거리게 한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