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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빅원’ 승부수-인공지능 조선접목… 권오갑의 ‘新불도저 경영’

입력 | 2020-03-19 03:00:00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다음 100년 키우는 재계 뉴 리더]
<10> ‘조선업의 봄’ 그리는 현대重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허허벌판에서 한국 조선업을 개척하던 순간이 떠올랐다.”(2019년 3월 8일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 체결 당시)

“그동안의 아픔과 걱정을 뒤로 하고 맞이할 우리만의 봄이 아주 가까이까지 왔다.”(올해 3월 17일 임직원 서한)

지난해부터 이어진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사진)의 메시지는 지난 6년간 생존을 위해 갖은 고통을 견뎌야 했던 현대중공업그룹이 마침내 새로운 도약의 문턱 앞에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9월 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에 사장으로 부임한 권 회장은 전 임원의 사직서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벌였다. 조선업 전체가 수주 절벽과 대규모 적자의 수렁에 빠진 상황을 구조조정과 사업 분할 등으로 넘어섰고 2018년 무렵부터 선박 수주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권 회장은 지난해 초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이라는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 글로벌 1위 ‘슈퍼 빅 원’ 띄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세계무대에서 각각 ‘빅 원’으로 불리는 거대 조선사다. 현대중공업은 여전히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으로 ‘슈퍼 빅 원’을 출범시키고 세계 조선시장의 판 자체를 흔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대중공업 디지털관제센터에서 ‘힘센엔진’의 운전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이 KDB산업은행과 체결한 계약은 현대중공업이 물적 분할을 통해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고 산은은 보유하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현물 출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새로운 ‘우산’ 밑에 현대중공업그룹의 3개 조선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와 대우조선해양까지 4개의 조선사가 들어가게 되는 구조다.

이런 재편 과정에서 각 회사의 영업과 설계, 생산을 최적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조선해양을 세계적인 연구개발(R&D) 및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로 발전시켜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킨다는 전략이다. 현대중공업은 1973년 울산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조선중공업’을 설립하며 한국 조선산업을 처음으로 개척한 역사가 있다. 권 회장은 이번 계약을 체결하며 현대중공업의 역사를 돌아봤다고 한다. 그는 “국내 조선업의 현실 극복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면 현대중공업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결심이 오늘 자리를 만들게 했다”고 밝혔다.

○ 조선소·선박에도 디지털 기술 접목


‘조선업의 봄’을 위한 초대형 기업결합이 올 상반기까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경쟁당국의 본격적인 심사를 받는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은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조선업에 접목하는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KT와 손잡고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5G 기반 스마트 조선소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빠른 속도와 끊김 없는 전송이 특징인 5G 기술을 △산업안전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등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최근에는 선박용 발전 엔진에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선박운전최적화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AI가 선박 내 발전 엔진 정보를 분석한 뒤 최적의 연비를 낼 수 있도록 해 연료비를 1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올해 1월에는 AI를 활용하는 첨단 항해지원시스템인 하이나스(HiNAS)를 개발하기도 했다. 하이나스는 AI 기술로 주변 선박의 움직임을 자동 인식해 해상에서의 선박 충돌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또 선박의 실시간 운항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 경로를 제안하는 ‘통합 스마트십 솔루션(ISS)’으로 미국선급협회(ABS)의 기술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로봇 등으로 확장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리더십 및 조직 체인지도 진행 중이다. 사업 분할을 통해 한 울타리 안에 있던 사업들이 각각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연결된 것이 대표적이다. 권 회장은 2017년 4월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지주 로봇사업부문)를 모두 독립법인으로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각각의 책임경영을 통해 분할된 건설기계, 일렉트릭 등은 모두 2017년 분할 첫해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또 올해는 현대로보틱스의 독립을 통해 로봇산업 분야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국내 1위 로봇생산 업체로 그동안 자동차 조립 로봇 등을 제작해 온 현대로보틱스는 서비스 로봇과 협동 로봇, 스마트팩토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현대로보틱스의 신사업은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분야다.

그룹 전반에서 신기술 확보에 힘을 쏟는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창립 50주년인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경기 성남시 판교 일대에 글로벌 R&D센터를 착공하기도 했다. 앞으로 약 5000명의 연구개발 인력이 근무하면서 기술 중심 경영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는 없다”며 “첨단 기술로 조선업에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사업에까지 진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