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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비고비, 72년 선거사를 돌아보다

입력 | 2020-03-18 03:00:00

일민미술관 ‘새일꾼’展
선관위 소장 400여점 자료 바탕 아카이브전 형태로 전개
설치-퍼포먼스 등 작가 21팀 참여… 개인 관점서 선거의 의미 재해석
각종 표어-포스터 눈길 사로잡아… 관객 참여 프로그램도 다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63년 창설 이후 제5대 대통령 선거부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국민투표 홍보 포스터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일민미술관 2층에서 1987년 이전의 포스터들을 만날 수 있다. 투표를 상징하는 ‘손’,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비둘기’, 국화인 ‘무궁화’가 자주 등장한다. 일민미술관 제공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국가가 부르면 뛰어나가 총을 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애국자지요.” “평소 무정부주의를 추구해요. 국가 없이 지구 단위의 사회 구성체가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애국이란?’ 답변이 양극단을 두고 화려한 스펙트럼으로 갈린다.
 
24일부터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의 첫 풍경이다. 질문에 답하는 시민들을 담은 영상이 돌아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애국자가 누구냐’라는 문구가 빨간 볼드체로 관객을 맞이한다. 그 옆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실시된 근대적 선거인 1948년 5·10 총선거의 자료들이 펼쳐진다. 당시 많은 후보자들은 자신을 독립운동에 기여한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선거는 애국뿐 아니라 환경, 여성, 주거, 복지 등 무수히 다양한 욕망이 경합하는 장이다.

‘새일꾼’전은 이렇게 변화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역사를 전개해 온 선거를 돌아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기록보존소에 소장된 400여 점의 선거 사료와 신문기사를 재료로 동시대 예술가 21팀이 참여했다. 사료만을 활용했던 기존 전시가 과거를 충실하게 조명했다면, 이번엔 2020년의 맥락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선거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부정선거의 천태만상을 재구성한 정윤선 작가의 설치작품 ‘광화문체육관―부정의 추억’. 일민미술관 제공

특히 승자와 패자의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본 선거의 모습이 흥미롭다. 박혜수 작가가 일러스트 작가 최보연, ‘4컷만화 ○○○’과 협업한 ‘부정선거 아카이브’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치르게 된 선거 제도의 천태만상이 나타난다. 참관인에게 수면제를 먹여 결과를 조작하거나, 유권자들에게 막걸리나 관광 등 향응을 제공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반대로 ‘민주화 아카이브’에서는 권리를 위해 싸웠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마산의 17세 고등학생 김주열, YH사건의 김경숙, 그리고 일상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쳤던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각종 표어와 포스터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1956년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민주당)와 “가러봤자 더 못산다”(자유당)가 부딪쳤고, 1987년엔 “바다에는 해삼! 산에는 산삼! 군정종식에는 영삼!!”(김영삼)이 “야당 집권 악몽의 시나리오”(노태우)와 맞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였던 1948년 5·10총선거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선거엔 참여가 중요하듯, 이 전시도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미술관 밖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에서 목소리를 녹음하면 1층 전시실 무대 위 의자에 이 소리가 전달된다. 천경우 작가의 작품 ‘Listener‘s Chair’다. 로비에 마련된 기표소에서는 매주 다른 이슈에 찬성표 혹은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첫 주제는 ‘K-POP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군면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다. 또 기존 선거문화에서 각인되지 못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정치 참여, 동물 참정권까지도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2층 입구에 설치된 놀공의 작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에서는 1948년부터 2020년까지 대통령 선거를 게임 형태로 풀어볼 수 있다. 후보자의 이름과 정당 없이 공약만으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와 신문박물관이 협력한 6층 ‘미디어라운지’에서는 선거에 관한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